북한이 신형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를 시험 발사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미국은 일본 가나가와(神奈川) 현 요코스카(橫須賀) 기지를 모항으로 하는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을 16일 동해로 이동시켰다고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이 전했다. 레이건함은 이날 오후 1시 반 경 약 3100명의 승무원을 태우고 기지를 떠났다. 요미우리신문은 “탄도미사일 발사를 거듭하는 북한에 대한 경계활동을 위해 동해로 향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현재 동해에서 경계활동 중인 핵항모 칼빈슨함과 교대하거나, 두 척 체제로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레이건함은 당초 15일 출항 예정이었으나 경미한 결함이 발견돼 하루 출항을 늦췄다. 니미츠급 핵추진 항공모함인 레이건함(10만2000t급)은 80여 대의 항공기를 탑재할 수 있어 ‘떠다니는 군사기지’로 불린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방일 중이던 지난 달 19일 정박한 레이건함 위에서 북한에 대해 “전략적 인내의 기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미국 국방부는 이번 도발을 통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핵심인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실험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미 보수 성향 매체인 워싱턴 프리비컨이 15일(현지시간) 익명의 국방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이 매체는 “북한이 신형 중거리미사일 발사를 통해 핵탄두의 대기권 재진입을 연습했다”고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대기권 재진입 실험은 핵미사일 개발의 핵심 단계(key step)로, 이는 북한이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미 상원 동아시아태평양소위원장인 공화당 코리 가드너 상원의원은 “지금까지 나온 가장 진보한 기술”이라고 평가한 뒤 “북한이 미국 영토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미사일 시험 능력을 향상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 제프 데이비스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미사일 유형을 여전히 감정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북한 미사일의 비행(궤적과 거리)은 ICBM과 일치하지 않았다”고 말한 뒤 “북한은 중국에 자산이 아니라 부채이고, 중국은 우리와의 협력을 통해 북한만이 홀로 불법 대량파괴무기를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새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고 앞으로 나아갈 방법을 논의하길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근거로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접근법이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충고하겠느냐’는 질문에 구체적인 답변을 피한 채 “이 시점에서 (한미 두 정상이 나눌) 구체적인 대화에 대해선 미리 앞서 나가진 않겠다”고 말했다.
북한의 계속되는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도발에 대한 유엔의 비판과 규탄 수위도 어느 때보 다 고조되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15일 이례적으로 별도 성명을 내고 “(북한의) 행위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북 제재결의에 대한 위반이자, 이(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것”이라며 “북한은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책무를 충실히 준수하고, 비핵화의 길로 복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핵 실험 도발에 대해선 유엔 사무총장이 비판 성명을 발표하곤 했지만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대한 별도 성명은 드문 일이라고 유엔 소식통들이 전했다.
일본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군사력 증강의 명분으로 삼고 방위체제 강화를 서두르는 모습이다. 방위성은 이번처럼 북한이 높은 고도로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낙하 속도가 빨라 현재의 방어 시스템으로는 요격이 어렵다”고 외부에 밝히고 있다.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방위상은 16일 각의(국무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북한이 액체연료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며 “스커드, 노동, 무수단과 탄두의 모양이 달라 신형일 가능성이 있다. (지난 달 군사 퍼레이드에 등장한 미사일과) 형태가 유사하다”고 밝혔다. 또 “일정한 기술적 진전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한다”며 경계심을 보였다.
이나다 방위상은 전날 국회에서도 “일본의 탄도 미사일 요격 능력을 한층 향상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해상배치형 요격미사일 ‘SM3 블록 2A’의 조기 배치와 지상 배치형 이지스 시스템 ‘이지스 어쇼어’ 도입을 언급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지스 어쇼어를 도입하면 현재 해상배치형 요격미사일 SM3와 지대공 유도미사일 패트리엇(PAC3) 등 2단계인 일본의 요격 시스템이 3단계로 진화하게 된다.
한편 집권여당인 자민당에서는 요격이 어려워진 만큼 직접 적기지를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15일 열린 ‘북한 핵실험 미사일 문제 대책본부’ 회의에서도 적기지 공격능력 확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고 아사히신문이 16일 전했다. 일본 정부는 공격능력 확보를 위해 내부적으로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도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