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한국시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플레이어스챔피언십에서 최연소 우승을 차지한 김시우는 “한국선수로 아무도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가고 싶다”며 더욱 굳게 의지를 다졌다. 소그래스TPC에서 펼쳐진 대회 마지막 날 4라운드 18번홀에서 우승을 확정한 뒤 김시우가 주먹을 쥐며 기뻐하고 있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플레이어스챔피언십 우승 뒷이야기
“아침에 일어나니 그제야 조금씩 실감이 났다. 아직도 꿈을 꾸는 것 같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제5의 메이저대회’인 플레이어스챔피언십에서 최연소 우승을 차지한 김시우(22)의 다음날 아침은 평온했다. 전날 밀려드는 언론 취재와 인터뷰로 비행기 시간까지 연기하며 하루 더 미국 플로리다주 폰테베드라비치에 머물렀다. 경기가 끝나고도 2시간 넘게 취재진이 몰려들었지만,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짐 정리를 마치고 겨우 몸을 추스른 김시우는 다시 전날을 돌아봤다. 그는 “아직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어제 잠자려고 해도 들뜬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특히 제이슨 데이와 함께 시상식 무대에 오른 게 너무 뿌듯했다”고 털어놓았다.
서울 홍제동에서 태어난 김시우는 6세 때 아버지를 따라 골프연습장에 갔다가 골프채를 처음 잡았다. 당시에는 타이거 우즈(미국)와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가 그의 우상이었다.
“데이가 최연소 우승을 축하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당신도) 예전에 웹닷컴투어에서 최연소 우승을 해보지 않았느냐’고 얘기했다. 그리고 ‘더 열심히 노력해서 곧 뒤따라가겠다’고 말했다.”
제이슨 데이(30·호주)는 불우한 어린시절을 딛고 남자골프 세계랭킹 1위에 올랐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된 데이의 모습은 김시우에게 큰 영감을 줬다. 김시우는 “영광스러운 자리에 데이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기분이 묘했다. 다시 돌아봐도 그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웃었다.
김시우.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 다음 목표는 세계랭킹 10위
김시우는 올해 들어 부진했다. 지난해 8월 윈덤챔피언십에서 PGA 투어 데뷔 첫 승을 신고한 뒤 플레이오프까지 돌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새 시즌 개막과 함께 무언가 엇박자를 보였고, 그러다 등 부상까지 이어지면서 성적부진에 시달렸다.
“그때를 돌아보면 정말 힘이 들었다.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오로지 연습하고 훈련하면서 빨리 정상으로 되돌아오기만을 준비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늦어지면서 더 힘든 시간을 보냈다.”
김시우는 1월부터 3월까지 최악의 성적을 보였다. 지난해 3년 만에 PGA 투어 재입성에 성공한 뒤 가장 저조한 성적이었다. 특히 6경기에서 2차례 기권과 4연속 컷 탈락은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던 차에 새로 영입한 스윙코치 션 폴리와의 만남은 부진 탈출에 큰 도움이 됐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스윙을 배운 김시우는 스승이라고 할 만한 코치를 만난 적이 없었다.
고통의 시간을 참고 이겨낸 뒤 이룬 우승이기에 기쁨은 더 컸다. 김시우는 “더 큰 난관이 오더라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며 한층 성숙해진 모습을 보였다.
김시우는 플레이어스챔피언십 우승으로 톱클래스 반열에 올랐다. 우즈, 가르시아, 조던 스피스에 이어 PGA 투어에서 25세 이전 2승 이상을 거둔 4번째 선수가 됐고, 아시아선수로는 가장 어린 나이에 2승을 경험했다. 당연히 다음 목표는 더 커졌다.
“앞으로 더 나아가고 싶다. 세계랭킹 28위까지 올랐는데, 10위 안에 드는 게 목표다. 그런 다음 한국선수로는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싶다. 메이저대회 우승도 그 중 하나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보다 더 노력하고 땀을 흘릴 각오가 돼 있다.”
22세 김시우의 앞날에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PGA 투어 5년 시드를 확보했고, 3년간 마스터스 초대장도 받는다. 무엇보다 9월 열리는 프레지던츠컵 무대에 오를 수 있게 된 것도 그가 세계적 스타로 도약했음을 알리는 표지다. 김시우는 “새로운 세상이 기대된다”며 더욱 단단하게 의지를 다졌다.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