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5·18민주화운동 37주년]5월 상황일지 일련번호 19개 누락 과잉진압-집단발포 일어난 18∼21일 집중적으로 빠져 ‘21일 13시10분 폭도 도청 점거’ ‘14시10분 난입 시민 물러나’ 중간에 긴박했던 순간 보고는 없어 김희송 전남대 5·18연구소 교수 “군부, 은폐-조작위해 삭제한 듯” 軍, 1988년 청문회 앞두고 ‘511연구위원회’ 비밀조직 운영
1980년 5월 21일 낮 12시경 전남도청 앞 금남로에서 시민들과 공수부대가 대치하고 있는 모습. 1시간 후 공수부대의 집단발포로 시민 34명이 숨졌다. 광주일보 제공
○ 군 기록에 없는 시민 사망 보고
1980년 5월 21일 공수부대의 전남도청 앞 발포 상황은 당시 시민을 향한 사격이 누가 명령을 내려서 어떻게 이뤄졌는지 밝혀내는 핵심 열쇠로 알려져 있다. 1990년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그날 발포로 숨진 34명에 대해 정부는 보상을 했다.
그동안 군은 총을 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군의 자위권 행사에 의한 것이며 아무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주장을 펴 왔다.
그러나 동아일보가 당시 작성된 계엄사령부의 ‘계엄상황일지’와 2군사령부 ‘계엄상황일지’, 전투병과교육사령부(전교사) ‘작전상황일지’ 및 ‘작전일지’, 특전사 ‘전투상보’, 31사단 ‘전투상보’를 확인한 결과 21일 오후 집단 발포에 따른 시민 사망 보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계엄사령부의 상황일지 21일자에는 ‘13시10분 폭도에 의해 전남도청 및 도경 점거’, ‘14시10분 도경 및 도청에 난입했던 시민은 물러나고 계엄군과 군중은 도경 및 도청 정문 앞에서 대치중이며 계엄군은 건물 주위를 경계하고 있음’이라고만 적혀 있다. 2군사령부 상황일지에도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전교사 작전상황일지에는 ‘13:00 도청 앞 시위군중 장갑차와 버스로 군경에 돌진. 군경의 최루탄 발사 도청진입 방어’라고 기록돼 있다.
안종철 5·18유네스코등재추진단장은 “21일 집단 발포는 5·18민주화운동의 분수령이 되는 중요한 사건”이라며 “군부가 당시 기록된 집단 발포 상황이 자신들에게 불리할 것으로 보고 사후에 삭제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특정 시기 일련번호 사라진 상황일지
▲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사령부가 작성한 21일 계엄상황일지. 오후 1시를 전후해 발생한 공수부대의 집단발포 내용이 빠진채 ‘13시10분 폭도에 의해 전남도청 및 도경 점거’만을 기록하고 있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논문에 따르면 1980년 5월 1일부터 31일까지 작성된 계엄상황일지의 일련번호가 19곳 누락돼 있다. 상황일지를 작성하려면 일련번호를 부여하고 접수 시간 및 송화자, 내용, 처리를 순차적으로 기록해야 한다. 17일 상황일지는 일련번호 2282번으로 끝난다. 그러나 2283번으로 시작돼야 하는 18일자는 2286번부터 시작한다. 2283번부터 2285번까지 빠져 있다. 19일, 20일, 21일, 23일, 25일자에도 일련번호가 사라진 것이 나타났다. 일련번호 누락이 집중된 18일부터 21일까지는 계엄군의 과잉 진압과 발포, 시민들의 무장과 관련한 진실 규명을 둘러싸고 논란이 되는 기간이다. 김 교수는 논문에서 “일련번호 누락이 특정 시기에 집중된 것은 군부가 은폐와 조작을 목적으로 삭제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밝혔다.
○ ‘511연구위원회’의 역할
▲ 1988년 국회 청문회를 대비해 국방부와 보안사령부 등이 구성한 511영구위원회 문건에는 위원회 내 작전반을 만들어 각 부대의 상황일지를 수집, 분석, 평가하고 쟁점 사항에 대한 국회 답변서를 작성하도록 돼 있다. 5·18민주화운동 관련 군 기록 조작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의 하나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본보가 입수한 ‘511연구위원회 설치(안)’에 따르면 위원회에는 국방부 외에 합동참모본부, 보안사령부, 육군본부,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참여했다. 511연구위원회는 2개월 후 ‘511상설대책위원회’로 확대, 개편된다. 511연구위원회가 작성한 ‘511상설대책위원회 편성(안)’에 따르면 대책위는 7월 11일부터 국방부 제1차관보 직할기구로 운용하며 명령이 있을 때까지 국방부 제3회의실에 설치한다고 돼 있다.
대책위에는 계엄반, 작전반, 법무·감찰반, 보안반, 조사반, 총괄반을 뒀다. 계엄반은 각종 상황일지 및 참고 서류, 영상자료 분류, 작전반은 각 부대 상황일지를 분석, 평가하면서 쟁점사항 답변서 작성을 맡았다. 보안반은 위원회 활동의 보안대책을 강구하도록 했다. 대책위가 군 관련 자료를 국회에 넘기기 전 민감한 내용을 삭제, 은폐했다는 의혹을 사는 대목이다.
1988년 평화민주당 광주특위 실무팀장을 맡았던 송선태 전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511대책위에 참여한 보안사가 최종 게이트키퍼 역할을 했다는 의혹이 짙다”며 “새 정부가 당시 집단 발포 기록을 찾아내고 군 관련 자료를 사전 검열한 511연구위원회의 실체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