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정성은 프리랜서 VJ
앵글에 여성의 뒷모습이 잡힌다. 장소는 밤의 숲속. 인적 드문 곳이다. 그럼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화면 속 그녀는 다음 장면에서 성폭행을 당하거나 살해될 테니까. 운이 좋으면 도망치기라도 하지만 어찌 됐든 이 모든 상황은 관객들로 하여금 공포감을 조성한다. ‘스토리상 꼭 필요한 장면이었을까?’ ‘이런 식의 성폭행 묘사는 정당한가?’ 하는 문제의식이 들기 시작했다. 관객으로서도 의문이 들었다. ‘여성인 나는 왜 영화를 볼 때마다 높은 확률로 이런 공포를 느껴야 하는 걸까?’ 영화에서 시작된 고민이 몇 년 후 일상의 것이 되었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1년 전 오늘로 돌아가고 싶다. 가서 강남역에 있는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지금 화장실에 가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그렇다 한들 그 비극을 막을 수 있을까. 아마 또 다른 그녀가 희생되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사회는 조금씩 변하고 있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한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사람들끼리 만나면 날씨 얘기, 정치 얘기 하듯 페미니즘 이야기가 오갔다. 대학교 캠퍼스엔 단톡방 성희롱을 고발하는 내부고발자 남성들의 대자보가 끊임없이 올라왔고, 여성들은 ‘82년생 김지영’을 돌려가며 읽었다. 그렇게 여성들은 코르셋(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억압)을 던지고, 남성들은 맨박스(남자를 둘러싼 고정관념)로부터 탈피하며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가고 있다.
오늘은 정확히 강남역 사건 1주년 되는 날이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피해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추모곡으로 바친다.
‘전해주고 싶어 슬픈 시간이 다 흩어진 후에야 들리지만….’ 이 곡은 지난여름 탄핵의 시초가 된 이화여대 학생들이 총장 대신 마주한 1600명의 경찰들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부른 노래다.
‘널 생각만 해도 난 강해져 울지 않게 나를 도와줘….’
정성은 프리랜서 V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