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즈버그, 오하이오’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작가 셔우드 앤더슨의 단편 중에 ‘달걀’은 개인적으로 ‘세계단편명작 10선’을 꼽는다면 빼놓을 수 없는 소설이다. 큰 욕심 없이 살아가던 아버지가 가족에 대한 책임을 느끼곤 양계장 사업을 시작하지만 실패한다. 그 후 작은 음식점을 차린 아버지는 손님들에게 유흥거리를 제공해줘야 한다는 일념으로 달걀로 마술을 부리려는 시도를 한다. 어느 날 한 젊은이를 상대로 달걀을 세워 보이는 것도, 좁은 유리병으로 달걀을 집어넣는 마술도 다 실패한 아버지가 마침내 어머니 침대 옆에서 무릎을 꿇고 “어린 소년처럼” 우는 모습은 실제로 본 것같이 가슴이 아프다. 그런 아버지의 빈 정수리를 어머니가 쓰다듬는 장면을 묘사한 부분은 또 얼마나 쓸쓸한지.
최근에 어떤 책에서 마음을 가라앉힌다는 뜻의 ‘정심(定心)’이라는 단어를 오랜만에 보게 되었다. 스스로 마음을 가라앉히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 평소에 책을 읽거나 걷는 일 말고도 매일 늦은 저녁이면 한 알씩 삶아서 허기를 달래는 달걀을 나는 물속에 집어넣기 전에 손으로 만지작거리곤 한다. 타원형의 둥글면서 깨지기 쉬운 그 살아 있는 다공질의 달걀을 가만히 쥐고 있는 사이, 어쩌면 나에게는 그것이 정심을 행하는 또 다른 방법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달걀에 관한 속담 중에 “달걀도 굴러가다 서는 모가 있다”라는 말이 있는데 ‘좋게만 대하는 사람도 성낼 때가 있다’는 뜻 외에도 ‘어떤 일이든지 끝날 때가 있다’라는 의미로도 읽는다. 이 작지만 특별한 달걀이, 나에게는 제자의 가정에 있던 그 어려움은 지나갔다고 말해주는 듯 보인다. 셔우드 앤더슨의 ‘달걀’의 발표 당시 원제목은 ‘달걀의 승리’였다. 사물도 아닌 달걀 한 알을 손으로 감싸고 있다가 이런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
조경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