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고마운 사람이다. 참여정부와 노무현 대통령을 지킨 전사(戰士)였다. 수구언론으로부터 노 대통령 다음으로 공격을 많이 받았다.” 2012년 1월 ‘노무현의 사람들, 이명박의 사람들’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문재인은 저자 양정철을 이렇게 소개했다. 문재인은 “저로 하여금 책을 쓰게 하고, 제 등을 떠밀어서 정치권으로 다가가게 했다. 제가 낸 ‘운명’이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고, 정치적으로도 떴다”며 ‘양비(양정철 비서관)’ 신세를 많이 졌다고 했다.
▷노무현 청와대에서 양정철만큼 논쟁적인 인물도 없었다. 언론노보 기자 출신인 그는 5년 내내 홍보수석실 비서관으로 언론과의 전쟁에 앞장섰다. 임기 후반엔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명분으로 기자실 폐쇄를 주도했다.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인사 청탁 접수를 거부하는 유진룡 당시 문화관광부 차관에게 “배 째드리지요”라고 했다는 말은 전설처럼 떠돌고 있다. 2008년 언론탄압 백서를 발간한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는 그를 ‘기자실 대못질 5인방’ 중 한 사람으로 기록했다.
▷2009년 노 전 대통령 서거 뒤 노무현재단 초대 사무처장 등을 지낸 양정철은 2012년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서면서 문재인의 ‘복심(腹心)’이 됐다. 문 대통령이 사석에선 말을 놓을 정도로 가깝다. 그가 어제 새벽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이제 잊혀질 권리를 허락해 달라”며 퇴장을 선언했다. 당분간 뉴질랜드로 떠나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고 한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오랜 지기인 ‘시카고 사단’의 밸러리 재럿 시카고 부비서실장을 백악관 선임고문에 임명해 8년간 주요 결정을 논의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에게 백악관 선임고문 자리를 줘 실세면 실세지, 비선 소리는 안 나오게 했다. 나서면 ‘패권’, 빠지면 ‘비선’이라며 욕을 먹었다는 양정철의 ‘잊혀질 권리’는 문재인 정부 5년 내내 유효해야 한다. 행여 비선 실세 소리가 슬금슬금 나온다면 양비에게도, 문재인 정부에도 불행이 될 수 있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