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지현 사회부 기자
안 씨는 어떻게 보면 유별난 공무원이었다. 2004년 출퇴근길에 차를 몰고 다니며 서울 7개 자치구에서 불법 광고물을 수거했다. 누가 시킨 적도 없었고 생색이 나는 일도 아니었다. 지금도 강남 지역 유흥가나 인근 길거리에 불법 전단이 뿌려지는 경우가 많지만 당시에는 주택가도 가리지 않고 뿌려졌다. 일부 동네에서는 야한 사진과 성매매 문구가 적힌 명함 크기의 전단이 매일 밤 골목을 채웠다. 초중고생이 등굣길에 쉽게 주워 볼 정도여서 부작용과 폐해가 극심했다. 대리운전 불법 현수막부터 ‘인신매매 아닌가’ 눈을 의심케 하는 국제결혼 광고 전단까지 판을 쳤다.
안 씨는 3개월 넘게 거리와 골목을 돌아다니며 용달차 3대에 나눠 실어야 할 분량인 1.5t의 전단을 줍고 다녔다. 서울시에 대책을 촉구하기도 했지만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다. ‘신기한 공무원이 있다’며 언론사 몇 군데에서 보도하자 “시장이 알기라도 하면 어쩌냐”며 질타하는 간부마저 있었다고 한다.
이후에도 그는 시민의 관점에서 불편한 일이 있으면 꼭 자치구나 서울시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자동차를 인도에 못 들어오게 하는 말뚝 모양의 볼라드(bollard·원통형 장애물)가 오히려 유모차나 노인과 시각장애인의 보행을 불편하게 한다는 점에 주목한 사람도 그였다. 그는 문제되는 지점의 사진을 찍어 해당 구청에 보내 의견을 접수시켰다.
그는 26년에 이르는 공직 생활의 소회를 e메일 고별사에서 표현했다. 자신이 복무한 직장에 대한 고마움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듣기에 불편한 대목도 적지 않다. 고위 공무원이라면 쓴소리로 받아들일 만한 문장도 있다. 떠나는 마당에 굳이 듣기 싫은 소리를 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응도 있긴 하다. 그러나 안 씨가 지난 26년간 어떻게 공직 생활을 했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답네”라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나 하나 나선다고 조직이 바뀌나, 세상이 바뀌나’ 싶은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러나 안 씨를 보면 자신의 맡은 바 소임을 다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돌이켜 보게 된다.
노지현 사회부 기자 isit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