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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호 “원했던 ‘등번호 14’ 날개 펄펄 나는 일만 남았네요”

입력 | 2017-05-18 03:00:00

신태용호 ‘공격의 핵’ 백승호




“양발 모두 기술이 좋다. 시야가 넓고 슈팅이 강력하다. 사비 에르난데스도 인정한 재능이다.”

17일 일본의 축구 전문 매체 ‘사커 다이제스트’는 2017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 주목할 선수를 소개하며 한국의 백승호(20·FC바르셀로나 2군)를 이렇게 설명했다. 사비는 2015년까지 바르셀로나(바르사)에서 뛰다 카타르의 알사드로 팀을 옮긴 스페인 국가대표 출신의 축구 스타다.

백승호는 20일 막이 오르는 ‘재능 발산의 무대’ U-20 월드컵에서 등번호 14번을 달고 뛴다. 3월 열린 4개국 대회와 5월 두 차례 평가전 때 백승호의 백넘버는 18번이었다.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상대팀에 전력이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가짜 번호였다. 14번은 백승호가 직접 택했다. 백승호는 “어릴 때 14번을 달고 잘했던 좋은 기억이 있다. 그래서 (감독님께) 따로 말씀드려 14번을 받았다”고 말했다.

좋은 기억은 초등학교 시절을 말한다. 대동초등학교 5학년 때 14번을 달고 뛰었다. 당시 백승호는 또래들과는 차원이 다른 스피드와 기량으로 출전하는 대회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초등학교 6학년이던 2010년 1월 차범근 축구상 대상을 받았고 같은 해 2월 세계적인 명문 클럽 바르사의 13세 이하 유소년팀에 입단했다.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였다. 백승호는 “좋아하는 번호를 달았다. 이제 (재능을) 보여 드리는 일만 남았다. 14번을 달고 월드컵에서도 좋은 추억을 남기고 싶다”고 했다.

백승호는 많은 기대 속에 바르사에 입단했지만 성장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2013년부터 3년간 바르사 유소년팀의 공식 경기를 뛸 수 없었다. FIFA가 유소년 선수 영입 규정 위반을 이유로 바르사에 내린 징계 때문이다. FIFA는 유소년 선수가 부모와 함께 이주할 경우에는 해당 지역 팀에 입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때 부모는 축구와 관련 없는 일로 이주해야 한다. 이때부터 경기 감각과 체력을 유지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도 바르사는 백승호를 버리지 않았다. 가진 능력을 믿었기 때문이다. 바르사 유소년팀은 해마다 10명가량의 선수가 다음 연령대로 올라가지 못하고 ‘라마시아(바르사 유소년팀 기숙사)’를 떠나야 할 만큼 경쟁이 치열한 곳이다. 출전 징계가 풀린 뒤 바르사는 백승호를 1군 훈련장으로 불러 월드 스타 리오넬 메시와 함께 훈련할 기회를 주기도 했다.

백승호는 대표팀에서도 한동안 마음고생을 했다. 작년 10월까지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던 안익수 감독은 백승호에게 출전 기회를 많이 주지 않았다. 백승호로서는 자존심에 상처가 될 만했다. 하지만 백승호는 어린 나이에도 별 내색 없이 꿋꿋하게 견뎠다. 신태용 감독이 20세 이하 대표팀 사령탑을 맡으면서 백승호는 새로운 계기를 맞았다. 지난해 11월 대표팀 사령탑이 된 신 감독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대표팀을 소집하면 백승호를 불러 훈련도 시키고 경기도 뛰게 하면서 활용법을 찾겠다”며 적극적인 기용 의사를 내비쳤다. 신 감독은 자신이 추구하는 일명 ‘에지 사커(날카로운 축구)’를 위해 넓은 시야와 정확한 패스, 골 결정력을 갖춘 백승호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백승호는 신 감독의 기대에 화답했다. 신 감독 부임 후 치른 6번의 공식 경기에 모두 출전해 3골을 넣었다.

“앞으로 다시 안 올 기회일 수도 있다. 이번 대회를 잘 치르면 내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백승호는 “축구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는 간절한 생각으로 경기를 뛸 것이다”라고 U-20 월드컵에 나서는 각오를 밝혔다. 백승호는 3월 국내에서 열린 4개국 대회가 끝난 뒤에도 스페인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바르사의 동의를 얻어 국내에 남았다.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에서 강도 높은 체력훈련을 하기 위해서였다. FIFA의 징계로 바르사에서 오랜 기간 경기를 뛰지 못한 백승호는 체력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하지만 지금은 90분 풀타임을 소화할 체력을 갖췄다.

17일 전주월드컵경기장 보조구장에서 실시한 대표팀 훈련 때 백승호는 평소 단정했던 머리가 조금 더 짧아져 나타났다. 신 감독은 기니와의 조별리그 1차전(20일)이 열리는 전주에 입성하기 전날인 15일 하루 동안 선수들에게 외출을 허락했다. 백승호는 미용실에 들렀다. 길지 않은 머리였는데 좀 더 짧게 다듬었다. 백승호는 “대회를 앞두고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는 의미다”라고 말했다. 백승호는 그동안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국내 팬들에게 제대로 보여 주지 못한 기량을 U-20 월드컵에서 쏟아붓고 싶어 한다. 두 살 위 형들과 함께 참가했던 2014년 아시아축구연맹(AFC) U-19 챔피언십, 또래들과 함께 갔던 2016년 AFC U-19 챔피언십에서는 출전 기회를 거의 얻지 못했다.

초등학교 축구를 평정했던 6학년 때 백승호의 키는 149cm로 작은 편이었다. 지금은 180cm다. 백승호는 “우리는 우승을 목표로 잡고 있다”고 했다. 안방에서 열리는 U-20 월드컵을 앞둔 백승호는 훌쩍 자란 키만큼 큰 꿈을 꾸고 있다.

전주=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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