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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자리 늘어날 기회”… “무늬만 정규직 잔뜩 생길까 걱정”

입력 | 2017-05-18 03:00:00

[청년에게 일자리를/청년이라 죄송합니다]2부 ‘노오력’ 내비게이션





“글쎄요. 단순히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만 그치지 말고 청년들이 다닐 만한 양질의 일자리가 늘면 좋겠어요.”

방송국 입사를 꿈꾸는 취업준비생 임세원 씨(27·서울여대 언론학 전공). 졸업 후 수십 군데에 원서를 넣지만 꿈을 이루지 못했다. 임 씨는 “일할 자리는 있지만 다 파견직이나 계약직”이라고 하소연했다. 그가 새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에 관심을 갖는 이유다. 청년들 사이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0)’ 선언이 화제다. 취업 선호 1순위인 공공기관들이 실행에 속도를 내고 있는 데다 한국씨티은행이 16일 비정규직 300여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등 민간부문의 확산 움직임도 보이기 때문이다.


○ “양질의 일자리 늘 것으로 희망”

문 대통령의 ‘비정규직 제로’ 추진 발표 후 동아일보 청년일자리 취재팀에는 ‘노동시장 변화가 궁금하다’고 물어온 청년이 많았다. 국내 전체 임금근로자(1962만7000명)의 3분의 1(644만4000명·2016년 8월 기준)이 비정규직이라는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

취재팀이 3, 4월 청년 일자리 문제로 심층 인터뷰를 한 취준생 112명에게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73%가 ‘긍정적’(40%) 또는 ‘매우 긍정적’(33%)이라고 답했다. ‘부정적’이나 ‘매우 부정적’은 7%에 그쳤다.

청년들은 이 정책으로 청년 일자리가 감소할 것이란 우려보다는 장기적으로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 도움이 될 것이란 희망을 가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이란 질문에는 ‘당장은 채용이 줄더라도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 장기적으로 취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응답(30%)이 가장 많았다. 10∼30대 비정규직은 231만7000명으로, 전체 비정규직(644만4000명)의 36.0%에 이른다. 취준생 김성식 씨(28)는 “비정규직을 전전하던 청년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양질의 일자리가 증가하면 나에게도 이득이 될 것”이라며 “청년에게는 일자리가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갈 만한 일자리가 없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비용 문제로 신규 채용이 줄어 청년들의 취업이 불리해질 것이다”라는 대답은 6%에 불과했다.

○ “정규직 전환보다 비정규직 처우 개선이 우선”

하지만 ‘현실성’과 ‘노동환경 개선’을 강조하는 청년도 많았다. 설문조사에서 두 번째로 많은 22%는 ‘정규직 전환보다 급여 인상과 노동환경 개선 등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를 줄이는 게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비정규직을 0%로 만들 수 없는 현실을 감안해 비정규직 처우부터 개선해 달라는 주문이다. 정규직이지만 실질적으론 비정규직 같은 대우를 받는 중규직(무기계약직) 양산을 우려하기도 했다. ‘무늬만 정규직일 뿐 기존 비정규직 수준의 일자리가 양산될 것’이라고 답한 청년은 11%에 달했다.

취재팀은 이런 조사 결과를 토대로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혜화역 인근에 ‘청년보드’를 설치하고 청년들에게 “‘비정규직 제로’ 정책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비정규직을 줄이는 것은 안정적인 고용을 위해 지켜가야 할 가치 아닌가요?(대학생 김범석 씨·22)” “감당이 될까요? 청년들의 기대감만 높이는 포퓰리즘 정책으로 끝나지 않게 해주세요.(대학생 박현진 씨·20)”

취재팀은 청년들에게 △신규 채용이 줄어 청년 취업에 불리 △장기적으로 취업에 도움 △정규직-비정규직 격차 줄이기가 우선 △비정규직 수준의 일자리만 증가 등의 5개 선택지에 스티커를 붙이게 했다. 신중하게 스티커를 붙여나간 청년들이 가장 많이 꼽은 항목은 ‘격차 줄이기가 우선’이었다.

○ 전문가들 “비정규직 제로보다 차별부터 없애야”

기업 현장의 실상은 청년들의 희망적 기대와 달리 난관이 적지 않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대기업 200곳을 조사한 결과 45곳이 올해 신규 채용 계획이 없거나 줄일 계획이다. 정년 연장 등 실제 인건비 부담이 늘면서 신규 채용이 감소하는 ‘풍선 효과’가 생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비정규직 자체를 없애는 것보다는 비정규직의 차별을 없애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비정규직 제로(0%)’라는 식으로 획일적으로 받아들여져 ‘고용안정 대 신규 일자리 감소’라는 찬반 대결 구도로 갈 경우 정책의 본질이 사라지고 사회적 논쟁만 커질 것이란 진단이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문제는 공공이건 민간이건 상시적 업무에서도 비정규직을 써서 비용을 절감하는 ‘비정규직의 남용’”이라며 “동일한 노동을 하는데도 저임금, 고용불안을 겪는 비정규직 차별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사 양보 속 구체안을 마련하고, 사회적 의견을 수렴하면서 단계적으로 전개해야 정책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의견도 많았다. 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비정규직 고용 안정을 담보하는 대신 비용 부담은 기존 정규직과 노조가 양보하고 기업도 인적자본에 더 투자를 하는 식으로 노사정(勞使政)이 모두 한 발씩 양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비정규직 얼마나 차별받고 있나

중소기업 비정규직 임금, 대기업 정규직의 35%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 1호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책’이 발표된 직후 쏟아진 반응 가운데엔 “정규직 전환보다 비정규직 처우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동아일보 특별취재팀이 청년 11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같은 의견이 22% 나왔다. 대한민국 노동계에서 비정규직은 얼마나 차별받고 있을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는 우선 ‘임금’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2016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비정규직의 평균 임금(149만4000원)은 정규직(279만5000원)의 절반을 조금 넘는다. 특히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월급은 대기업 정규직의 35% 수준까지 떨어진다. 비정규직 중 퇴직급여(40.9%)와 시간외수당(24.4%), 유급휴일수당(31.4%)을 받는 비율은 정규직(각각 85.5%, 58.4%, 74.3%)의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근로자의 권리라고 할 수 있는 사회보장제도에서의 차이도 크다. 정규직은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가입률이 각각 82.9%, 86.2%, 84.1%에 이른다. 하지만 비정규직의 가입률은 36.3%, 44.8%, 42.8%에 불과하다. 비정규직 상당수가 기본적인 사회보장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김수연 sykim@donga.com·김동혁·최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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