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원 열사 부친 윤석동씨 “아들 영혼결혼식 위해 만든 노래… 불리는 한 영원히 살아있을것”
17일 윤상원 열사의 아버지 윤석동 씨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결정의 소감을 밝히고 있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17일 광주 광산구 임곡동 창동마을에서 만난 윤석동 씨(91)의 눈가가 촉촉이 젖었다. 윤 씨는 윤상원 열사(사진)의 아버지다. 윤 열사는 3남 4녀 중 장남이었다. 윤 열사는 대학을 졸업한 뒤 은행에 취업했다가 광주에서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이후 5·18민주화운동 마지막 날인 1980년 5월 27일 시민군 대변인으로 옛 전남도청을 지키다 계엄군이 쏜 총에 숨졌다. 윤 열사 시신은 다음 날 청소차에 실려 광주 망월묘역에 안장됐다. 관 번호 57, 검안 번호 4-1, 묘지 번호 111이 기록의 전부였다. 윤 열사의 신원은 한 달 뒤에야 확인됐다.
5·18민주화운동 37주년을 하루 앞두고 만난 윤 씨는 18일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된다는 소식을 듣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신장염 등으로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에 앉았지만 이내 또렷한 목소리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위해 노력해 주신 사람들이 고맙다. 특히 제창을 지시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감사한다”고 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윤 열사가 역사 속에 부활했다는 희망이 담긴 노래였다. 그래서 윤 씨는 아들의 영혼결혼식에 참석해 노래를 처음 들은 뒤 생각날 때마다 불렀다. 그는 1990년대 중반 5년 동안 5·18유족회 회장을 맡는 등 5월 진실 규명을 위해 활동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둘러싼 논란을 떠올리며 윤 씨는 “신군부라는 불법 정권과 불의에 항거한 청년을 간첩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며 “그런 왜곡을 하는 사람들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했냐고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이 아닌 합창으로 불리자 ‘정의는 죽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올해 기념식에서 다시 제창된다는 소식에 ‘상원이는 죽지 않았다. 노래가 계속되는 한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윤 씨는 16세 때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를 75년 동안 이어가고 있다. 아들을 가슴에 묻고 평범한 농사꾼에서 시민운동가로 변신한 뒤 가슴속 민주와 자유에 대한 열망을 일기에 담고 있다. 하지만 올해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참석은 몸이 불편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윤 씨는 “이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소식을 들었으니 마음이 놓인다”라며 “살아있는 동안 상원이 기념관이 완공되는 것이 유일한 소망”이라고 말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