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혁신’이라는 단어는 ‘무조건 좋은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최근에는 4차 산업혁명의 도래로 경영환경 자체가 급변하면서 ‘혁신을 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인식마저 퍼지고 있다. 그렇다면 모든 혁신은 다 좋은 것일까. 최근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코리아에 “혁신에도 때로는 양 조절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담은 논문이 소개됐다.
파올로 아베르사 런던시티대 교수 등 연구진은 지난 30년 동안 300대 이상의 포뮬러원(F1) 경주용 자동차에 적용된 혁신기술을 모두 문서화한 다음 이 데이터를 F1 레이스의 실제 성적과 대조해 검토했다. 그 결과 연구진은 더 많은 혁신기술을 적용한 자동차가 오히려 저조한 성적을 거두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F1 머신에 혁신기술의 적용이 늘기 시작하는 초반부에는 성적이 향상됐지만 특정 변곡점을 지나자 오히려 떨어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덜 혁신적인 자동차가 더 우수한 성적을 올리기도 했다.
아베르사 교수는 이 같은 연구 결과에 대해 “혁신을 둘러싼 환경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대개 F1 경주용 자동차처럼 복잡한 제품을 제조하는 기업들이 격동적인 시장 환경에 처하게 되면, 변화에 앞서 나가기 위해 본능적으로 모든 분야에서 혁신을 꾀하려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격변하는 환경일수록 무턱대고 혁신을 추구할 경우 실패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는 게 아베르사 교수의 주장이다. 이는 스마트폰, 의약품 등과 같은 다른 복잡한 제품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새로운 규제 조치나 중요한 정치적 변화처럼 외재적 힘이나 시스템의 충격이 생길 때마다 혁신가들은 손해를 본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고승연 기자 sea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