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장에 윤석열
尹 지검장 “너무 벅찬 직책… 최선 다하겠다” 윤석열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오른쪽)이 19일 청와대의 임명 발표 직후 서울 서초동 특별검사 사무실에서 박영수 전 특검(왼쪽)과 함께 나오며 만면에 미소를 짓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문재인 대통령은 윤석열 신임 서울중앙지검장(57·사법연수원 23기)을 검사에서 검사장으로 승진시키면서 검찰의 이른바 ‘빅2’(서울중앙지검장, 법무부 검찰국장)에 앉혀 검찰 개혁에 얼마나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윤 지검장은 ‘돈봉투 만찬’ 사건으로 감찰 대상이 된 전임 서울중앙지검장인 이영렬 부산고검 차장(59·18기)보다 5기수 후배다.
박근혜 정부에서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하다 ‘항명 파동’으로 좌천됐던 윤 지검장이 중용되면서, 향후 검찰 후속 인사가 이른바 ‘우병우 사단’ 등 ‘박근혜 정부 사람’ 솎아내기에 맞춰질 것이라는 전망이 검찰 안팎에 파다하다. 윤석열 지검장은 국정 농단 사건 재수사와 박근혜 전 대통령 공소 유지에 ‘올인’할 것으로 보인다.
○ 파격 인사에 “새로운 줄 세우기” 우려
반면 지방 검찰청 C 차장검사는 “서울중앙지검장의 직급을 고검장에서 검사장으로 낮추면서까지 윤 지검장을 앉힌 것은 또 다른 줄 세우기를 시작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서울중앙지검 D 검사는 “청와대가 이례적으로 윤 지검장 인사를 직접 발표한 것은, 검찰을 직접 손보겠다는 뜻이냐”고 말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청와대가 검찰청법을 어기고 검사 인사를 직접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검찰청법에 따르면 검사 보직은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대통령에게 제청하게 돼 있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모두 공석인 상태에서 이런 절차가 제대로 이뤄졌느냐는 것이다. 법무부는 “인사는 절차대로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 11년 만에 호남 출신 검찰국장
‘돈봉투 만찬’으로 감찰을 받고 있는 안태근 대구고검 차장(51·20기)의 후임에 임명된 박균택 대검 형사부장(51·21기)은 광주 출신이다. 호남 출신이 검찰 인사와 예산을 총괄하는 검찰국장이 된 건 2006년 노무현 정부의 문성우 검찰국장(61·11기) 이후 11년 만이다.
○ 검찰 고위 간부 ‘줄사표’
법무부 장관 직무를 대행해온 이창재 차관(52·19기)이 이날 사의를 밝힌 데 이어 윤 지검장의 인사가 발표되자 검사장급 이상 고위 간부들은 크게 동요하는 분위기다. 공석인 검찰총장 대행 김주현 대검 차장(56·18기)도 이날 오후 6시 반경 사의를 밝혔다.
19일까지 문재인 정부 출범 10일 동안 퇴임한 김수남 전 검찰총장(58·16기)을 포함해 이 차관과 김 대검 차장 그리고 ‘돈봉투 만찬’ 사건으로 좌천된 이 부산고검 차장(전 서울중앙지검장)과 안 대전고검 차장(전 법무부 검찰국장) 등 고위직 검사 5명이 줄줄이 옷을 벗거나 사의를 표명했다.
한 검사장은 “초임 검사장인 윤 지검장에게 서울중앙지검장을 맡긴 것은, 기존 검찰 수뇌부는 다 나가라는 사인을 준 것 아니냐”고 말했다. 또 다른 검사장은 “평생 일밖에 모르고 살았는데 정권이 바뀌었다고 ‘적폐’로 몰려 등 떠밀려 나가게 돼 착잡하다”고 말했다. 재경 지검의 한 차장검사는 “검찰을 떠나려는 검사장이 워낙 많아 그만두고 싶은 차장, 부장검사들은 올해 사표를 못 낼 지경”이라고 말했다.
○ 윤석열, 우병우·육영재단 수사 벌일 듯
윤 지검장은 일단 박영수 특검팀과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국정 농단 사건 수사에서 미진했던 부분을 보강해 사건을 마무리하고, 박 전 대통령 등 국정 농단 사건 피고인들의 유죄 판결을 받아내는 데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50·19기) 사건의 경우 앞선 수사에서 우 전 수석이 김 전 총장을 비롯한 검찰 수뇌부와 수시로 통화한 사실이 드러났다. 재수사가 시작되면 청와대와 검찰 수뇌부의 유착 의혹이 파헤쳐질 가능성이 높다.
일부에서는 윤 지검장이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의 경제적 유착 고리를 밝혀내기 위해 박 전 대통령이 과거 이사장을 지낸 육영재단을 수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재수사 방침을 밝힌 ‘정윤회 문건’ 사건도 검찰 고발이 있을 경우 윤 지검장의 주요 수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 내부에서는 윤 지검장이 박형철 청와대 반부패비서관(49·25기)과 호흡을 맞춰 강한 사정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두 사람은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 당시 상부 반대를 무릅쓰고 수사를 확대하다 이른바 ‘항명 파동’으로 함께 징계를 받았다. 박 비서관의 청와대 입성이 윤 지검장의 추천과 권유로 이뤄졌다는 얘기도 돌고 있다.
▼윤석열 중앙지검장은▼
댓글사건 수사때 항명-좌천… 특검팀 검사로 화려한 부활
윤석열 신임 서울중앙지검장(57·사법연수원 23기)은 치밀한 수사력과 타고난 배짱으로 오랜 기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서 근무한 특별수사통이다.
충암고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 79학번인 윤 지검장은 김수남 전 검찰총장(58·16기)과 대학 동기다. 대학 4학년 때 사법시험 1차에 합격했으나 2차 시험에서 떨어진 뒤 9년을 내리 낙방한 끝에 1991년 33회 시험에 합격했다. 연수원 동기 사이에서는 ‘맏형’으로 통한다.
윤 지검장은 대검 중수1, 2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을 거치며 현대차그룹 비자금 사건,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 사건, 저축은행 비리 사건 등 대형 비리 수사에 참여했다.
그는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 특별수사팀장을 맡아 조영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과 국정원 직원 체포영장 청구문제로 충돌을 빚었다. 윤 지검장은 이 사실을 같은 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공개해 ‘항명 파동’을 빚고 2014년 1월 대구고검 검사로 좌천됐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석파견검사로 발탁되며 부활했다.
신광영 neo@donga.com·김준일 기자·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