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 철학자·영산대 교수
사람들은 공동체를 이루면서 ‘사회계약’을 맺습니다. 근대 민주주의가 발달하면서 사회계약에 관한 이론은 중요해졌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장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입니다. 여기서 사회계약이라 함은 사실 ‘정치적 계약’을 뜻합니다. 이는 루소의 저서 부제가 ‘정치적 권리의 원칙’이라는 것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루소는 ‘모든 것은 정치와 관련 있다’는 의식을 갖고 사회계약론을 전개했습니다.
이것은 아직 좁은 의미의 사회계약입니다. 기본적으로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정치적 권력에 합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그에 따른 제도를 정립하는 일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회계약의 개념을 넓게 잡으면 국가기관에서 입안하고 실천하는 모든 정책 또한 사회계약의 한 형태입니다. 공동체 구성원의 동의를 거친다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국민 각자는 국가 정책의 계약 당사자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볼 때 모든 정책은 신중하게 입안돼야 하며 구체적으로 실천 가능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정자의 열정은 자칫 사회계약의 통시적 성격을 간과하기 쉽습니다. 여기에는 좀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아무리 긴 임기라도 위정자에게는 짧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모든 선출직 공직자가 느끼는 것입니다. 지방자치단체 의회의 의원과 지자체장, 국회의원과 대통령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위정자의 ‘심리적 임기’는 권력의 크기에 반비례한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권력을 더 많이 가진 위정자일수록 임기가 더욱 짧게 느껴집니다. 물론 일상의 시간은 항상 ‘빠듯하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권력은 권력을 가진 자의 시간을 더욱 빠듯하게 조입니다. 수적으로 아무리 긴 임기라도 위정자에게는 항상 짧습니다.
하지만 임기는 짧아도 정치는 깁니다. 세대를 이어가는 공동체를 위한 정치행위의 성과는 지속적일 때 유의미하며 ‘국민적 보람’이 됩니다. 어떤 위정자든 ‘나의 보람’이 아니라 국민적 보람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말이겠지요. 때론 임기 내에 이룬 업적으로 평가받기보다 앞으로의 완성을 위해 다음 정부로 이어지는 과업으로 평가받겠다는 용기 있는 의식의 전환 또한 필요하겠지요. 임기는 짧고 정치는 길다는 것을 상기하면 이 또한 보람찬 시도일 수 있습니다.
김용석 철학자·영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