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연 소년들/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박은정 옮김/512쪽·1만6000원·문학동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왼쪽 사진)는 19일 “나는 전쟁에서 군부대와 탱크의 수 같은 게 아니라 철저히 인간의 영혼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오른쪽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파병된 소련 병사들이다. 학교를 다닐 나이의 소년들도 사람을 죽이고 마을을 불태워야 했으며 전쟁으로 죽거나 불구가 되거나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렸다. 서울국제문학포럼 제공·인터넷 화면 캡처
소설 등 다른 글에 이렇게 말줄임표가 많았다면 다소 촌스럽고, 조금은 덜 다듬어졌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201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저자(69)의 이 글에서 말줄임표는 저자가 집어넣은 것이 아니다.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며 벌어진 전쟁에 아들을 보냈던 어머니의 호흡이다. 인터뷰 중 말을 잇지 못하는 어머니의 고통과 흐느낌이 그대로 전해진다.
벨라루스 출신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저자는 5∼10년간 수백 명을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논픽션을 써 왔다. 이 책은 대표작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 이어 여성과 소년병의 눈으로 전쟁의 잔혹함을 담았다.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소련 병사 중 상당수가 아직 학생이었다. “사람들은 영화에서와는 전혀 다르게 죽어요. … 실제로는 머리에 총탄이 박히면 뇌가 터져 공중으로 날아가고, 머리가 터진 사람은 그걸 잡겠다고 달려가죠. 한 500m는 족히 달려요. 사람이 죽음이 구원이라도 되는 양 죽여 달라고 간청하는 걸 듣고 또 지켜보고 있느니…”
23∼25일 열리는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차 방한한 저자는 19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소련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정당하다고 속였다. 아프가니스탄 주민 100만 명 정도를 사살했지만 미디어는 입을 닫은 채 병사들을 영웅이라고만 치켜세웠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 문학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힘이 있다면 당연히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진실을 보고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책을 쓴 동기를 밝혔다.
저자의 책에는 영웅은 안 나온다. 작고 평범한 이들의 고통만이 그득하다. 저자는 “국가는 ‘스몰 피플(작은 사람들)’을 이용하고 죽였고 또 이들이 죽이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이들의 역사는 간과되고 있다. 이들의 역사를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쟁에서 아름다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강조했다. “아직도 소비에트 선전선동의 잔재가 남아 있어 ‘무기를 든 사람이 멋있다’는 관념이 있습니다. 전쟁은 그 자체가 살인입니다.”
저자는 23일 오전 10시 반 광화문 교보빌딩 컨벤션홀에서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피해자들을 담은 책 ‘체르노빌의 목소리’에 관한 글(‘미래에 관한 회상’)을 발표한다. “(취재할 때 만난) 나이든 여자분이 잊히지 않아요. ‘햇살도 쨍쨍하고, 꽃도 피었고, 쥐들도 멀쩡한데 내가 왜 이곳을 떠나야 하나요’라고 묻더라고요. 이건 우리가 알던 혼란스러운 전쟁이 아니고, 새로운 형태의 전쟁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