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조각 난 신/와타나베 기요시 지음·장성주 옮김/452쪽·1만8000원·글항아리
1942년 열여섯 살의 나이로 일본제국 해군에 자원입대해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와타나베 기요시는 4년 뒤 이 같은 문장으로 맺는 편지를 쓰고 고향을 떠난다. 장남이 아니어서 물려받을 것이 없어 스스로 살길을 찾고자 군대를 택한 소년이었다.
이 책은 ‘천황에게 받은 은혜를 갚고자’ 싸웠던 와타나베가 패전 뒤 천황에 대한 허상에서 고통스럽게 벗어나는 과정을 그렸다. 인간의 모습을 한 신인 줄 알았던 천황이 막상 전쟁이 끝난 뒤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것에 와타나베는 깊은 배신감을 느낀다. 천황을 신으로 떠받들도록 가르친 학교 교사, 전쟁 때는 입대하라고 부추기던 지식인들이 종전 뒤에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부정하는 모습에 와타나베는 당황하고 좌절한다.
1946년 1월 천황은 인간의 모습을 한 신으로 자처한 적이 없다는 ‘인간 선언’에 이어, 3월 ‘천황은 국민을 통합하는 상징’이라는 헌법 초안을 맞닥뜨리고 와타나베는 ‘복무 기간 중 받은 금품을 돌려드린다’는 내용으로 편지를 쓴다. 이야기를 시작한 1945년 9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의 이 기록은 거짓 신앙을 강요했던 국가에 붙들린 과거와 싸워서 이겨낸 한 사내의 고백이자, 그 시대에 대한 증언이기도 하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