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네의 끝에서/히라노 게이치로 지음/양윤옥 옮김/496쪽·1만5000원·아르테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영화 ‘라라랜드’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여주인공 미아가 재즈피아니스트 세바스찬의 연주를 우연히 듣는 바로 그 장면 말이다. 슬프고도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이 끝나자 둘은 아무런 말없이 눈빛만 교환하고 헤어진다. 많은 사람이 아름다운 이별로 기억하는 건 이 책 저자의 말마따나 삶의 사실성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없기 때문이리라.
일본의 차세대 거장 히라노 게이치로가 쓴 이 책은 마흔에 접어든 기타리스트(마키노 사토시)와 여성 저널리스트(고미네 요코)의 담담한 사랑 이야기다. 중세 유럽 수도사를 그린 데뷔작 ‘일식’부터 최근작인 SF소설 ‘던’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이어온 저자가 독특한 로맨스 소설을 써냈다. 폭넓은 지적 편력을 보여준 소설가답게 로맨스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국제정치부터 발칸 지역 역사, 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참고문헌 목록이 달렸다.
둘은 이내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예기치 않은 시련을 겪는다. 완벽주의자 마키노는 깊은 슬럼프에 빠져 음악을 향한 열정을 잃고, 요코는 취재 현장에서 테러를 겪은 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걸린 것. 이들에게 들이닥친 삶의 고통은 강렬했던 첫 만남을 떠올려 서로를 찾게 된다.
서두에 라라랜드를 인용한 이유를 이해한 독자라면 마키노와 요코의 사랑이 어떤 결말을 맺을지 벌써 눈치 챘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마지막 장면이 결코 식상하지 않은 게 이 책의 매력. 어쩌면 요코와 마지막 만남이 될 공연에서 마키노가 연주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모음곡 1번’을 철저한 고독으로 묘사한 저자의 문학적 표현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