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잘 읽었다”는 말을 들을 때 고마우면서도 마음이 무겁다. 한낮 거리에서 웃옷을 훌훌 다 벗고 멍하니 서 있다가 아는 사람을 마주친 기분이다.
‘말과 글을 완전히 멈춰도 괜찮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요즘 책을 읽으면서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 “그래도 너는 아직 글을 쓰잖아.” 오래전 한 선배가 커피를 사주며 했던, 그때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야릇한 말과 함께. 그렇다고 이제 그 말뜻을 이해하게 됐다는 건 아니다.
‘삼국지연의’의 작가는 유비가 죽음을 맞으며 신하 제갈량에게 “당신의 심복인 마속은 하는 말이 실체보다 큰 자이니 중한 일에 쓰지 말라”는 충고를 남겼다고 썼다. 제갈량은 그 유언을 무시했고 머잖아 마속의 잘못으로 인해 참담한 패전을 겪은 뒤 그를 참수한다.
읍참마속(泣斬馬謖) 고사를 담은 그림.
가끔 “너무 솔직하게 쓴다”는 지적을 듣는다. 하지만 사실은 그저 적당히 솔직한 척해 왔을 뿐일 거다. ‘그런 척’의 대가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면서도 그 수밖에 없다. 종잇장만큼 얄팍한 배워 앎의 실체. 읽고, 읽고, 읽을수록, 그 사실만 명백하다.
커피를 사주던 선배는 다시 글을 쓰고 있다. 그의 글을 읽고 또 읽는다. 언젠가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여전히, 제갈량을 흉내 내보려는 마속의 마음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