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능한 정치인이기는커녕 권력의지도 없는 줄 알았다”… 한때 미워했다는 노사모 고백 사자와 여우의 정치력으로… 적폐청산 밀어붙일 인사까지 무능이 자초한 盧정부 실패… ‘특권동맹’ 탓으로 돌리진 말라
김순덕 논설주간
나도 문재인 대통령을 잘못 본 것 같다. 선하고 성실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 못 하는 훌륭한 인품이라는 말은 익히 들었지만 리더에게 꼭 필요한 사자의 심장(용맹)과 여우의 두뇌(간교)까지 갖췄을지 의심을 했다. 2004년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을 지낸 운동권 이론가 주대환도 “정치 안 하려고 하는 문재인을 ‘다 알아서 해드릴 테니 걱정 마세요’ 하면서 끌어낼 수 있는 것이 민주당 내 486의 힘”이고 문재인은 얼굴 마담이라고 했다.
그런데 아니다. 여우다. 문 대통령은 취임 당일 호남 총리에, 486이지만 친문(친문재인) 아닌 젊은 비서실장을 발표해 친문 패권주의를 의심하는 민심을 무장해제시켜 버렸다. 심지어 사자의 모습도 보인다. 이름만으로도 검찰 개혁을 예고하는 조국 민정수석, 재벌 개혁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호명해 검찰과 재계를 충격에 빠뜨린 것이다. ‘적폐 청산’을 요구한 지지층의 10년 묵은 체증을 뚫어준 건 물론이다.
이런 노회한 정치력이 절치부심으로 가능할까. 2011년 ‘문재인의 운명’에는 노무현 정부 첫 조각 때 이미 ‘개혁적 인사들로 일거에 내각과 청와대의 대세를 장악해야 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김대중 정부 때도 한두 명씩 개혁인사를 발탁했더니 못 견디더라는 거다. 그럼에도 노 정부 때는 사회 분야를 제외하곤 인재풀이 모자라 경제 안보 국방 외교에선 개혁인사를 못 했다고 그는 가슴을 쳤다.
개혁성은 철철 넘치되 인사청문회에선 딱히 시비 걸기 어려운 장관들로 내각을 채워서는 지지율이 펄펄 나는 집권 초반 ‘적폐 청산’을 해내겠다고 문 대통령은 위장 취업자처럼 이를 악물었을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재집권에 실패한 이유가 성과를 거두지 못해서가 아니라 ‘특권동맹의 방해’ 때문이라고 믿고 있었다면 말이다.
더미래연구소의 ‘2017 집권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특히 검찰은 야권과 화해 무드가 조성될 때마다 이상하리만치 정확한 타이밍에 전격 수사를 단행해 김대중 정부에 부담을 줬다. 관료와 국정원, 검경이 제자리로 돌아가도록 놓아준 바람에 권위의 위기를 맞은 불행한 대통령이 노무현이었다. 언론도 그들의 눈에는 기득권 집단에 속한다. 보고서는 “민주적 진보적 사회경제 구조를 정착시키는 데 기득권 집단의 도전에 직면한다면 싸워서 굴복시키든지, 양보를 받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수적 가치를 지키지 못한 보수 정부 아래서 정권의 도구로 전락한 검찰, 갑질의 대명사로 낙인찍힌 재벌 등의 적폐 청산은 필요하다. 그러나 보고서가 지적했듯 재분배를 가능하게 하는 성장 없이는 어떤 개혁도 성공하기 어렵다. 박근혜 정부가 여지없이 무너진 큰 이유도 민생경제가 흔들려서다. 특히나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서 환율의 적절한 관리 없이는 수출도, 성장도, 물론 ‘소득중심 성장’이라는 이름의 분배도 불가능하다. 아무리 새 정부가 남북대화와 한반도 평화협정을 원하더라도 한미동맹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