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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진]병사 월급 인상 공약

입력 | 2017-05-23 03:00:00


50대 이상 남자들은 군에서 겪었던 추위와 허기를 지금도 기억한다. 추위는 초가을부터 늦봄까지 병사를 떨게 하지만 허기는 1년 365일 몸과 마음을 괴롭힌다. 밥 먹고 돌아서면 배고프다는 말이 과장이 아님을 훈련소에 들어서자마자 알게 된다. 소설가 황석영은 밤에 몰래 건빵 다섯 봉지를 모두 털어먹은 병사가 결국 식도가 막혀 행복하게 숨을 거뒀다는 훈련병 때 일을 쓴 적도 있다.

▷1970년 1000원이던 병장 월급이 1만 원을 넘은 것이 1992년이었다. 담배 몇 갑 더 사고 빵 한두 개 사먹고 나면 끝이었다. 올해 병장 월급은 21만6000원이지만 담배와 비누 휴지 등을 전부 각자 사 써야 하고 세탁기와 건조기 사용료까지 제하고 나면 남는 건 없다. 최근 국방부 조사에선 병사 78%가 월급이 부족하다고 했다. 군복무 21개월 동안 집에서 갖다 쓴 돈이 275만 원이 넘는다는 조사도 있다.

▷정부가 내년 병사 월급을 33% 올리는 예산안을 짜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병사 월급을 2020년까지 최저임금의 50%인 70만 원 수준이 되도록 연차적으로 인상하겠다”고 공약한 데 따른 조치다. 작년 병장 월급 19만7000원은 최저임금의 15%에 불과했다. 징병제 실시 국가 중 터키와 비슷한 수준이다. 베트남(27%) 대만(33%) 이스라엘(34%)은 물론이고 태국(100%)도 우리보다 비율이 높다. 정의당이 ‘열정페이’에 빗대 ‘애국페이’라고 비난할 만도 하다.

▷제대할 때 목돈 300만 원을 ‘희망준비금’으로 주겠다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은 월급에서 일부를 떼어 적금을 부어 돌려주는 식으로 둔갑했다. 문 대통령 공약대로 최저임금의 50%까지 병사 월급이 오르면 총 1400만 원 정도 된다고 한다. 국방부는 전역할 때 이 중 1000만 원을 일시금으로 주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1000만 원이면 대학 한 학기 등록금을 내고도 남는 돈이다. 문 대통령은 자기 말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는다고 했다. 이런 공약이야말로 강박관념을 갖고 이행해야 한다는 청년들이 많을 것 같다.

이진 논설위원 lee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