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기 성공한 현역 최다승 배영수

18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만난 한화 배영수는 프로 18년차 베테랑답게 알아서 먼저 촬영용 포즈를 취했다. 환하게 웃어 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배영수는 “아직 가야 할 길이 얼마나 남았는데요. 웃을 때가 아니에요”라고 재치 있게 답했다. 그는 올 시즌 안방에서 꼭 완투 또는 완봉승을 선물하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시즌 전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한화 선발 투수 배영수(36)의 올 시즌 키워드는 ‘내려놓기’였다. 2015년 11월 팔꿈치 수술 뒤 지난 시즌 내내 1군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던 배영수는 “예전엔 남 경기를 잘 안 봤는데 이번엔 (재활 기간 동안) 그렇게 TV로 야구를 많이 봤어요. 그동안 좋은 성적을 위해 너무 많은 생각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잘해 보려고 꾀를 부리다 쉽게 갈 길도 어렵게 갔다는 걸 깨달았죠”라고 했다.
프로 18년차.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에게도 깨달음이 필요했던 걸까. 내려놓기를 통해 여유를 되찾은 배영수가 이번 시즌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치고 있다. 부활, 재기 등 긍정의 꼬리표가 그의 이름 뒤에 붙고 있을 정도다.
18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만난 배영수는 “(타자에게) 맞고 안 맞고를 떠나서 오랜만에 긴 이닝을 책임진 것 같아 선발투수로서 좋다”며 웃었다. “내심 더 던질 욕심도 있었는데”라며 농담 섞인 진심까지 내비쳤다. 한화 전력분석요원이 그에게 건넸다는 “피가 너무 뜨겁다”는 말이 이해되는 대목이었다.
“김성근 (한화) 감독님과 이상군, 정민태 코치님 덕분”이라며 코칭스태프에 공을 돌린 배영수는 “그 어느 때보다 야구가 재밌다. 화끈한 타격, 멋진 수비를 (관중석이 아닌) 마운드 위에서 본다고 생각해 보라”는 말로 자신의 좋은 분위기를 에둘러 설명했다.
배영수의 선전이 주목되는 이유는 그가 경신 중인 현역 최다승 기록 때문이기도 하다. 현재 통산 132승을 올린 배영수는 앞으로 3승을 더하면 통산 다승 5위인 김원형 롯데 투수 코치(134승)를 넘는다.
그러나 정작 스스로는 “기록에는 신경 안 쓴다. 통산 승리가 더 많아진다고 한들 제가 그 하늘 같은 선배님들을 넘는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라며 개의치 않았다. “기록보다는 1승, 1승이 너무 소중해요. 예전에 시속 150km대 공을 던지면서 쉽게 아웃카운트를, 1승을 챙길 때는 느끼지 못한 감정이라고 할까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네요”란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야구 인생의 7회쯤 와 있다고 느낀다는 배영수는 “(이적 후) 한화 팬들에게 빚만 졌다. 시즌 초 약속한 것처럼 꼭 안방에서 팬들에게 완투 또는 완봉승을 선물하고 싶다”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배영수는 23일 KIA와의 경기에 선발로 나선다. 이 경기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자신의 상승세를 이어가는 동시에 팀으로선 4연패를 끊어야 하기 때문이다. 21일 삼성과의 벤치클리어링 도중 몸싸움으로 퇴장당한 투수 비야누에바의 부상(왼손 약지 인대 파열)이라는 악재를 맞은 한화로선 배영수의 호투가 가라앉은 분위기 전환의 보약이 될 수 있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