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꼽히는 가계부채가 올해 1분기(1~3월) 17조 원 넘게 불어 사상 최대 규모인 1360조 원에 육박했다. 다만 금융당국의 전방위적 ‘대출 조이기’로 브레이크가 없던 급증세는 다소 꺾이는 분위기다.
하지만 절대적인 증가 규모가 여전히 큰 데다 취약계층이 몰려있는 제2금융권의 빚 증가세가 계속되고 있어 안심할 단계가 아니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문재인 정부는 가계의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비율을 150% 이하로 관리하는 ‘총량 관리제’를 준비하고 있다.
2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3월 말 현재 가계신용(가계부채) 잔액은 작년 말(1342조5000억 원)보다 17조1000억 원(1.3%) 늘어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가계신용은 은행 보험사 대부업체 등 금융권에서 받은 가계대출(1286조6000억 원)과 결제하기 전 카드 사용 금액(판매신용·73조 원)을 합한 것으로 실질적인 가계 빚을 보여준다.
하지만 증가세가 완전히 꺾였다고 보기에는 여전히 이르다는 지적이 많다. 가계 빚이 급증하기 전인 2010~2014년의 1분기 부채 증가액은 약 4조5000억 원에 그쳤다. 올 1분기 증가액의 약 4분의 1 수준이다. 지난해 동기 대비 증가율을 봐도 1분기에 11.1% 증가하면서 2015년 3분기 이후 7개 분기 연속 두 자릿수 증가율을 이어갔다.
또 서민과 자영업자들이 돈 빌리기가 어려워진 은행 대신 제2금융권을 찾는 ‘풍선효과’가 계속되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1분기 은행 가계대출 증가액은 1조100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조6000억 원)의 5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반면 저축은행 상호금융 등 비(非)은행 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은 1분기 7조4000억 원 늘어 작년 1분기(7조6000억 원)와 비슷한 증가세를 이어갔다. 가계부채의 질이 나빠지고 서민층의 소비 여력이 더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대해 문소상 한은 금융통계팀장은 “3월 중순 이후 비은행권도 여신심사 가이드라인 도입 등 리스크 관리 강화 정책이 시행돼 대출 수요가 넘어가는 효과가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위원회는 이날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전 금융권에 조속히 도입하는 등 부채 증가 속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이자만 따지는 현행 총부채상환비율(DTI)과 달리 DSR는 모든 대출의 원리금을 따져 대출 한도와 금리를 정하는 깐깐한 지표다. 금융위 관계자는 “DSR 로드맵을 다음 달 마무리하고 4분기에 DSR 표준모형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