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광해 음식평론가
나는 메밀로 만든다. 메밀은 점도가 약하다. 반죽을 오래 쳐대야 겨우 점성이 생긴다. 반죽을 좁은 구멍으로 눌러 내린다. 뜨거운 물에 바로 삶아야 겨우 국수 꼴을 갖춘다. 냉면, 막국수 모두 막 내려서 막 먹어야 한다. 왜 평양냉면이라는 근사한 이름과 달리 내 이름에만 ‘막’을 붙이는가. 그게 뭐 그리 중요하냐고? 그렇지 않다. 메밀 100% 냉면은 대부분 1만 원 이상이다. 막국수는 아무리 용을 써도 1만 원 이하다. 이름 한 번 잘못 짓는 바람에 나는 싸구려,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다.
막국수라는 이름은 1960, 70년대에 생겼다. 그 이전에는 막국수가 없었냐고? 그렇지는 않다. 오래전부터 나는 강원도 산골에 있었다. 다만 이름이 국수 혹은 냉면이었다. “에이, 설마?”라는 이도 있겠다. 더러 “어딜 감히 네까짓 게 냉면이라고?”라며 눈 흘기는 이도 있겠다. 그래서 더 억울하다. 멀쩡한 이름을 싸구려로 바꾼 것이다.
국수를 만들려면 우선 ‘망돌’(맷돌)로 메밀을 ‘타개야’(갈아야) 한다. 타갠 메밀을 체로 치면 고운 가루는 아래로 빠지고 거친 ‘무거리’(껍질 등 찌꺼기)는 위에 남는다. 무거리를 다시 망돌에 넣고 곱게 간다. 다시 체로 친다. 국수 만들 가루는 이렇게 얻었다. 왜 메밀이냐고? 산골에는 감자, 메밀, 옥수수밖에 없다. 옥수수로 국수를 만들면 올챙이국수다. 툭툭 끊어져 국수라 부르기엔 조금 미안하다. 감자녹말로 국수를 만들면 함경도식 ‘농마’국수다. 농마국수는 남쪽으로 내려와 함흥냉면이 되었다. 더 분통이 터진다. 왜 감자로 만든 농마국수는 냉면이 되고 나는 막국수인가.
‘분틀(면자기·麵4機)’은 메밀국수 뽑는 기계다. 1980년대 유압식 국수 기계가 보급되기 전, 나는 늘 분틀에서 태어났다. 분틀은 위에서 굵은 작대기로 내려 누르는 힘으로 국수를 뽑는다. 분틀 막대기가 앞니를 쳐서 ‘국수 뽑는 사람 중에 앞니 성한 사람 없다’는 말도 있었다. 냉면도 역시 분틀로 뽑았다. 조선 말, 기산 김준근(생몰 미상)이 그린 그림 이름도 ‘국수 내리는 모양’이다. 사내가 벽에 발을 디디고 낑낑거리며 분틀 막대기를 내리 누르고 있다. 어디에도 막국수나 냉면이라는 이름은 없다. 그저 국수다. 냉면이나 국수, 막국수 모두 같은 기계로 뽑았다. 왜 나만 ‘막’인가?
‘냉면과 막국수는 육수가 다르다’는 이들도 있다. 평양냉면은 원래 꿩고기 육수와 꿩 단자 고명을 쓴다는 내용도 있다. 가소롭다. ‘꿩 대신 닭’은 ‘맛있는 꿩고기 대신 맛없는 닭고기’가 아니다. 꿩은 공짜고 닭은 길러야 한다. 산에서 잡을 수만 있다면 꿩은 공짜다. 닭은 모이를 먹는다. 공짜 꿩을 못 구하니 어쩔 수 없이 귀한 닭을 쓴다는 뜻이다.
꿩이 어디 평양에만 있었으랴? 꿩고기 고명은 강원도에도 흔했다. 1970년대, 꿩잡이 전문포수가 춘천의 국수 파는 집에 상주했다. 불행히도 꿩은 별 먹을 게 없다. 털 벗기면 병아리만 하다. 뼈와 살을 일일이 발라내기도 힘들다. 잔뼈는 칼로 다진다. 꿩 단자를 먹다 보면 다진 뼈가 씹힌다. 야생 꿩은 누린내도 심하다. 꿩고기 육수는 좋아서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나마 쉽게 얻을 수 있는 고기였다.
황광해 음식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