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으나 싫으나 ‘대중정치 시대’… 대중조직화 능한 진보진영은 SNS 타고 대통령 갈아 치웠다 이젠 리더의 언행 옷차림 등 ‘스타일정치’에 정신 팔리나 정작 어렵고 중요한 정책 놓고 대중영합 거부할 용기 있는가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내가 뭘 할 수 있어?” 많은 사람이 무력감 속에 살았다. 그리고 그 무력감은 ‘유착’과 ‘무관심’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흐름을 만들었다. 한쪽은 어차피 그런 세상, 권력에 붙어 챙길 것이나 챙기자며 유착을 했고, 다른 한쪽은 정치로부터 멀어져 무관심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이제 세상이 달라졌다. 대중은 더 이상 무력하지 않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정보와 정서를 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공격적으로 표출한다. 개인 미디어로 의제 설정을 주도하기도 하고 댓글로 마음에 들지 않는 정치인을 ‘반쯤 죽여 놓기도’ 한다. 심지어 대통령을 탄핵해 쫓아냈다. 뭘 더 이야기하겠나.
정치권이 이러한 변화를 놓칠 리 없다. ‘친구 맺기’에서부터 모바일 당원 만들기와 외곽 조직 만들기를 거쳐 사실상 정치를 같이 하는 데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대중 속을 파고들고 있다.
먼저 움직인 쪽은 진보적 성격의 집단과 정당들이다. 외곽에서부터 힘을 모으는 데 익숙한 만큼 이러한 변화의 의미도 빠르게 파악했다. 일찍부터 ‘백만 민란’ 등의 대중 조직을 만들어 왔는가 하면, 노조나 시민단체 등과의 협력도 공고히 해 왔다. 그 결과, 이겼다.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새로운 대통령을 당선시켰다.
보수 쪽 집단이나 정당은 그 대응이 느리다. 한동안 힘이 대중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느끼지도 못했다. 당연히 이에 대한 단단한 구상이나 전략도 없었다. 그래서 졌다. 하지만 이들이라 하여 별수 있겠나. 최근 들어 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싫거나 좋거나 이제 대중정치의 시대다. 일면 민주주의의 심화라는 점에서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걱정이 많다. 우선 포퓰리즘, 즉 대중영합주의의 함정이다. 대중사회 내에 부당하거나 과도한 요구를 조율할 수 있는 자율정화의 메커니즘이 발달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하다. 우리 역사가 그럴 수 있는 방향으로 흘러오지 않았다. 정치권과 정부가 쏟아지는 요구들을 소화해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중이 그래서일까. 언론 역시 그런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이를테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외국 순방을 할 때도 한복을 입고 프랑스어를 하는 것을 순방 목적을 가릴 정도로 보도하는 것 따위이다. 새 정부 들어서도 대통령 부인이 싼 도시락이 신문의 주요 부분을 통해 보도되는 등 스타일과 관련된 보도가 예전보다 훨씬 많아지고 있다.
대중과 언론이 그러니 정치인인들 별수 있겠나. ‘스타일’ 문제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특히 지지율에 신경을 쓰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이것이야말로 대중적 지지를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실제로 풀어야 할 과제는 대중의 관심이 높지 않다는 이유에서 등한시될 수 있다. 대중정치에 숨어 있는 또 하나의 함정이다.
대중정치의 함정을 피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대중사회 내에 자율정화의 메커니즘을 강화시키는 것, 정치권과 정부가 대중을 설득할 수 있는 올바른 비전과 전략을 갖추는 것 등이다. 그러나 그것은 중·장기 과제다. 문제는 지금 당장 어떻게 하느냐이다. 별수 있겠나. 지도자들이 대중정치의 문제를 깊이 인식하고 잘못된 요구에 함부로 영합하지 않는 수밖에 없다.
특히 이번 정부는 대중정치의 바람을 타고 성립된 정부다. 그 함정에 빠질 위험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대붕역풍비(大鵬逆風飛),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좋아했던 이 말을 기억하고, 또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