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방문중 일정 취소… 급거 귀국 두테르테 “계엄령 1년 더 갈수도”… 야당 “공포정치 강화 포석” 우려
마약범죄 용의자를 재판 없이 사살할 수 있도록 조치해 국제적인 인권 유린 논란을 빚고 있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남부 민다나오 섬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이 지역에서 활동 중인 ‘이슬람국가(IS)’ 추종 반군 단체 마우테의 대규모 테러 행위를 막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두테르테가 이번 사태를 자신의 ‘공포 정치’를 강화하는 계기로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23일 AP통신과 CNN 등에 따르면 두테르테는 러시아 방문 중 마우테와 필리핀 정부군 간 교전이 벌어졌고, 마우테가 마라위 시의 시청, 교도소, 주요 거리 등을 장악했다는 보고를 받은 뒤 즉각 계엄령(60일간 유효)을 선포했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마친 뒤 남은 일정을 취소한 채 곧바로 귀국길에 올랐다. 그는 “(계엄령 발효 기간이) 한 달 안에 끝나면 좋겠지만, 1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말해 사태가 장기화될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번 사태는 필리핀 정부군과 경찰이 또 다른 급진 이슬람 무장단체인 아부사야프의 지도자인 이스닐론 하필론에 대한 체포영장을 집행하려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마우테는 마라위 시의 학교와 성당 등에 불을 지르고 전력 관련 시설을 파괴해 도시 전체가 ‘블랙아웃’에 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또 마라위 시의 주요 시설에 게양돼 있는 필리핀 국기를 내리고, IS의 상징 깃발과 비슷한 모양의 검정기를 게양했다. 자신들이 장악한 주요 건물에는 저격수도 배치하고 있다. 아직 정확한 민간인 피해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반군과의 교전 과정에서 정부군 3명이 숨졌고, 12명이 부상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