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AI ‘클로바’ 베타 버전 써보니
“나 심심해.” “운동을 시작하는 건 어떨까요?” “싫어.” “호불호가 명확하신 분이시군요.”
음성인식 인공지능(AI) 서비스 시대가 본격 시작하려는 모양이다. 아마존과 구글 등 외국기업에서 시작된 AI 서비스는 SK텔레콤(누구)과 KT(기가지니) 등 통신사를 거쳐 네이버와 카카오 등 IT기업으로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그간 음성인식 AI는 애플의 ‘시리’나 삼성전자의 ‘빅스비’처럼 휴대전화에 기본으로 탑재돼 있거나 ‘구글 홈’ ‘누구’ ‘기가지니’처럼 전용기기를 구입해서 쓰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런 기기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도 AI 기능을 이용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네이버가 내려받아 쓸 수 있는 AI 비서 앱인 ‘클로바’ 베타버전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한국어 AI 경쟁을 촉발시킬 클로바를 직접 사용해봤다.
한국어 음성인식 자체는 꽤 정확하다. ‘기능’을 ‘지능’으로 알아듣거나 ‘외국어대화’를 ‘외국어대와’로 알아듣는 등(물론 기자의 발음이 문제일 수도 있다) 오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마 처음 써 보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놀랄 만한 정확도를 보여준다. 재미 삼아 “야 이 빵꾸똥꾸야(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의 유행어)”라고도 해봤는데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에요”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기능적으로도 매우 다양하다. 날씨, 근처 맛집, 영화 등 지식 검색과 음악 추천, 일정 관리, 연락처 검색과 앱 실행 등 기본적인 것은 물론이고 ‘노래 불러 줘’ ‘외로워’ 등 감성 대화도 가능하다.
특히 눈길이 간 것은 ‘외국어 대화’ 기능이다. 중국어와 일본어는 번역 안내 수준이지만 영어로는 문답 형식의 대화를 할 수 있다. 클로바가 “Did you eat anything today?(오늘 뭐라도 드셨나요?)”라고 물으면 이에 맞는 대답을 사용자가 하고 그에 맞는 대화를 이어가는 식이다. 아마존 ‘에코’ 등 미국 AI 기기를 자녀들 영어공부용으로 사는 사람도 있다던데 그런 수요를 노린 듯하다. 직접 대면하는 상대방이 없어 더 편하게 외국어를 소리내 말할 수 있었다. 다만 영어 인식률은 기대에 크게 못미쳤다. “Yes, sure.(그래 당연하지)” 정도의 짧은 말은 잘 알아 들었지만 문장이 조금만 길어져도 인식이 제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았다.(기자의 영어 발음이 원어민 같지는 않지만 일반적인 한국인 정도는 된다.)
한국어 인식 자체는 잘되지만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클로바를 실행하면 ‘모범적인’ 명령어 사례들을 보여주는데 그렇게 맞춰 말하면 기능 실행이 잘되는 편이고 조금만 바꿔 말하면 “무슨 말씀이신지 못 알아 들었어요”라고 하거나 일반적인 검색 기능으로 넘어가는 때가 많았다. “토요일 오후 7시 동창회 일정 지워 줘”는 알아듣지만 ‘지워 줘’ 대신 ‘취소해 줘’라고 하면 못 알아듣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보면 ‘받아쓰기’는 잘하지만 그것을 잘 이해하는 정도는 아닌 듯하다. 아직은 이미 정해진 ‘모범 명령어’를 활용해 쓸 만한 수준이다. 하지만 베타버전 자체가 제대로 된 기능을 구현하기 위한 준비과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어 AI의 가능성은 충분히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AI는 결국 빅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 핵심인 만큼 오류 사례 등 데이터가 모일수록 기능은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끝으로 한 가지 더. 클로바는 자신의 이름을 ‘샐리’로 소개한다. 성별을 물어보면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만 목소리는 여자다. 아직은 인간으로 느끼기에는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지만 샐리가 불러주는 노래를 듣다 보면 영화 ‘그녀(Her)’처럼 AI와 사랑까지는 아니어도 반려동물처럼 마음을 주는 것은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난 아닐 것 같다고? 일단 들어보시길.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