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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북카페]불꽃처럼 살다 간 가수 달리다

입력 | 2017-05-26 03:00:00

佛 리자 아쥐엘로 ‘나를 춤추게 내버려 두세요’




이달 3일은 프랑스 여가수 달리다가 세상을 뜬 지 30년이 되는 날이었다.

긴 금발, 169cm의 큰 키와 날씬한 다리…. 달리다는 프랑스인에게 변치 않는 ‘엘레강스’(우아함)의 대명사다. 올해 프랑스에서는 달리다 추모 열풍이 대단하다. 이달 초 그녀를 기리는 다큐멘터리가 방영됐고, 파리의 패션 박물관인 팔레 드 갈리에라에서는 그녀가 입었던 드레스 200여 벌을 전시하고 있다.

그녀의 추모에 불을 지핀 영화감독 겸 작가가 있었으니 리자 아쥐엘로다. ‘LOL’(한국 개봉명 ‘비밀일기’), ‘당신만큼 아름다워’ 등 로맨스 영화를 주로 만든 리자는 1월 달리다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를 개봉했고 3월 책을 펴냈다.

달리다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리자는 “올림픽에서 챔피언을 꿈꾸며 훈련하듯 3년 넘게 나는 달리다만 생각했다. 내 삶에 넣고 싶었다. 그가 너무나 매혹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책에 썼다.

1933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이탈리아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달리다는 1950년 지역 미인 대회에서 우승하며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 1954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와 1950∼80년대 프랑스와 전 세계 음악계를 주름잡았다. 음반은 17억 장이 팔렸다.

이탈리아어 아랍어 프랑스어 영어는 원어민 수준, 독일어와 스페인어는 유창한 수준, 일본어는 대화 가능한 수준으로 구사할 정도로 뛰어난 언어 실력을 바탕으로 10개 언어로 노래를 불렀다. 월드뮤직을 한 단계 격상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사생활은 비극의 연속이었다. 리자는 책에서 “그녀는 나에게 너무나 파란 하늘과 시커먼 먹구름을 동시에 보여줬다.”고 썼다.

아버지와의 인연부터가 우울했다. 카이로 오페라하우스의 수석 바이올린 연주자였던 아버지 덕분에 일찍이 음악을 접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0년 6월 아버지가 수용소에 끌려가면서 불행은 시작됐다. 이탈리아가 독일과 동맹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4년 후 돌아왔지만 더 이상 바이올린을 켤 수 없게 된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폭력을 휘둘렀고, 증오에 휩싸인 그녀는 아빠가 빨리 죽기만을 기원했다. 1년 뒤 아버지는 세상을 떴다.

사랑도 실패의 연속이었다. 1967년 1월 연인이던 이탈리아의 싱어송라이터 루이지 텐코는 이탈리아 산레모 가요제에 달리다와 출전했지만 반응이 신통치 않자 호텔 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죽음을 가장 먼저 발견한 그녀는 큰 충격으로 한 달 후 파리 호텔에서 자살을 시도했다가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그녀의 전남편도, 10년 동안 사랑했던 남자친구도 차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울증을 앓으면서도 관객 앞에서 웃음을 지어야 했던 그녀는 1987년 5월 3일 파리 몽마르트르의 한 호텔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명함 위 자신의 이름 위에 줄을 긋고 쓴 유서에는 “삶은 나에게 너무 벅차네요. 나를 용서해 주세요”라고 쓰여 있었다.

리자는 “유명한 배우를 캐스팅할 경우 달리다의 모습이 가려질 수 있다”며 달리다 역으로 프랑스어를 전혀 못하는 이탈리아 모델 출신 배우를 캐스팅했다.

영화 제목(‘달리다’)과 달리 책의 제목은 ‘나를 춤추게 내버려 두세요’다. 달리다가 1979년 여름 내놓은 경쾌한 디스코곡이다. 유쾌한 안무를 곁들인 노래지만 가사는 그녀가 운명을 향해 외치는 절규 같다. “나는 사랑과 위험으로 살아요. 이 꿈이 끝날 때까지 날 춤추게 내버려 두세요.”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