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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기의 뉴스룸]J노믹스 성공하려면 ‘숫자 유혹’ 벗어나야

입력 | 2017-05-26 03:00:00


문병기 정치부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정책 ‘J노믹스’의 핵심은 ‘소득주도 성장론’이다. 이제 가계가 경제성장의 중심에 선다는 의미다.

오랫동안 경제성장은 주로 기업들의 책임이었다. 기업이 남들보다 뛰어난 기술로 값싼 제품을 만들어 팔아 돈을 벌면, 기업이 일자리를 창출해 소비를 일으키고, 기업이 세금을 내 정부의 재정을 떠받치는 식이다.

국가를 가정에 비유하면 정부는 엄격한 부모이고 기업은 생계를 책임지는 ‘맏이’ 정도가 될까. 모든 식구가 넉넉히 입고, 먹을 만큼 돈을 벌어오면 집안 시끄러울 일이 별로 없겠지만 벌이가 시원치 않으면 사정은 달라진다. 맏이를 떠받들던 부모라도 혹시 맏이가 제 주머니만 채우려고 식구들을 내버리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될지 모른다.

한국 경제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치솟는 청년실업률을 보면 불확실한 미래를 이유로 투자와 채용을 미루고 사내유보금을 쌓아 두는 기업이 제 욕심만 챙기는 ‘얄미운 맏이’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렇다고 변방을 떠돌던 소득주도 성장론이 국가의 경제기조로 부상한 것을 단순히 정치적 이유로 치부하긴 어렵다. 국내에선 외환위기 이후 근로자의 실질임금 증가율이 노동생산성 증가에 미치지 못했다. 근로자들이 열심히 일해서 기업 매출이 늘어났는데도 월급은 적게 오르면서 시장에 돈이 넘쳐도 가계 주머니가 홀쭉해졌다. 그래서 소비가 줄고 가계 빚은 늘어나고 기업은 제품이 안 팔려 투자를 줄이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이 소득주도 성장론이 주목을 받은 배경이다.

보수 정권인 박근혜 정부에서도 ‘초이노믹스’(최경환 경제부총리의 경제정책)로 소득주도 성장론을 도입했다. J노믹스와 초이노믹스의 차이점은 소득을 늘리는 수단이다. 초이노믹스가 ‘기업환류세제’ 등 간접 수단을 썼다면 J노믹스는 기업들로부터 세금을 더 걷고 정부가 일자리를 창출해 직접 소득을 만들어 주는 방법을 택했다. 초이노믹스가 해답을 찾지 못한 다차원 함수를 J노믹스는 일차 방정식으로 단순화시킨 셈이다.

그럼 J노믹스는 경제의 활력을 되살리는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출발 분위기는 좋다. 부처들은 이미 물밑에서 준비해온 일자리 창출 계획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는 후문이다. 일부 대기업은 비정규직 수천 명의 정규직 전환 계획을 서둘러 발표하고 나섰다.

하지만 우려도 나온다. 눈에 보이는 숫자에 급급해 단기 처방에만 매몰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공공 일자리 창출은 나라 살림이라는 저금통의 돈을 빼 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문 대통령이 여러 번 강조했던 것처럼 민간의 일자리 창출을 이끌 ‘마중물’일 뿐이다.

기업을 압박해 일자리를 받아내는 것도 오래가기 어렵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선 취임 초 30대 그룹 간담회로 대기업들로부터 수십만 명의 일자리 창출 약속을 받아냈다. 하지만 일자리와 연계한 규제 완화 등 경제 구조개혁 없는 단기 대책들은 대통령의 인기가 시들어 가면 힘을 잃기 쉽다.

J노믹스의 성패도 구조개혁에 달렸다. 최근 문재인 정부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80% 선을 넘어섰다. 문 대통령 스스로도 “요즘 국민의 과분한 칭찬과 사랑을 받고 있다”고 했다. 지금이 바로 구조개혁의 적기다.
 
문병기 정치부 기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