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훈 한국트렌드연구소 소장
긍정심리학 연구자인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을 이렇게 묘사한다. 또 스스로 밝게 빛난다고 생각하며 행복해하는 순간이라고도 했다. 많은 연구자는 몰입이 창의성의 원천이라고 말한다. 대표적으로 서울대 황농문 교수는 몰입이야말로 학습능력을 향상시키고 주입식, 암기식 교육의 폐해를 이겨내 창의력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강조하지 않아도 최근의 흐름을 보면 우리가 자연스럽게 점점 몰입의 일상화 시대로 가고 있다는 징후가 증가하고 있다.
요즘 소비문화에서 가장 뜨거운 단어는 ‘취향 저격’일 것이다. 여심 취향 저격, 신혼여행객 취향 저격, 성년의 날 취향 저격 등 소비가 일어나는 모든 영역에서 이 용어가 쓰인다. 그런데 최근 1년간 자신의 취향을 위해 어떤 소비를 했는지 물어봤더니 재미있는 결과가 나온다. 외식과 식품(26.3%), 레저 및 취미와 관련한 여가활동(23.3%), 패션 액세서리(17.1%) 등이 상위를 차지했다. 쉽게 말해서 먹고, 놀고, 자신을 꾸미는 활동들에서 자신의 취향을 확인하고 있다는 결과다.
이것들을 하다 보면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혹은 알아차리기 싫은 상태가 된다. 바쁘고 지친 삶 가운데서도 몰입의 상태에 쉽게 빠져들 수 있는 분야들이 취향 저격의 상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몰입 소비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몰입의 삶을 위해 라이프스타일이나 인생 설계도 바꾸고 있다는 정황들도 나타난다. 1인 가구의 증가나 나 홀로 캠핑족이 늘어나는 현상들이다. BC카드 빅데이터센터는 요즘 꾸준하게 관심을 모으고 있는 셀프 인테리어에 대한 카드 소비 금액을 조사했다. 셀프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 증가는 직접 꾸미는 것을 통해 뿌듯함, 즐거움을 얻을 수 있고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할 수 있다는 두 가지 요소가 원인이라고 한다. 그런데 다양한 가구 유형 가운데 유난히 1인 가구의 금액이나 이용 건수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구의 간섭도 없이 혼자 결정하고 혼자 꾸미고 혼자 즐거워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혼자 살기 때문에 자신의 취향을 실천하는 데 더 능동적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자기만의 취향을 즐기기 위해 혼자 살게 되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조금 더 확대해석하면 간섭 없이 나만의 즐거움에 몰입하기 위해 1인 가구가 되고 있는 것이다.
희귀한 피규어를 사 모으는 키덜트족이 더 이상 신기한 사람이 아닌 세상이 되고 있다. 온라인에는 그들만을 위한 오픈마켓이 성대하게 열렸다. 그들은 자신의 방 안에 모아들인 제품을 전시해놓고 그것을 바라보는 그 짧은 시간을 즐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세대를 불문하고 먹고 놀고 자신을 꾸민 그 순간을 포착한 사진으로 넘쳐난다. 인생 전체의 행복은 장담할 수 없지만 최소한 지금 이 순간 나는 스스로 밝게 빛날 수 있다. 몰입은 이제 일상적 삶과 소비의 가장 강력한 동기로 부상하고 있다.
김경훈 한국트렌드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