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 초청으로 홍콩을 찾은 것은 영화배우 장궈룽(張國榮)이 자살하고 반년이 지난 2003년 가을이었다. 엉뚱하게도 그가 투신한 만다린 오리엔탈호텔 24층 창문이 너무 작은 데 깜짝 놀랐다. 첫날 저녁을 빼고는 꽉 짜인 세미나로 사흘 내 웃을 일조차 없었다. 세계적 이코노미스트 스티븐 로치는 ‘차이나 리스크’를 경고했고, 앤디 셰는 왜 한국이 집값을 잡기 위해 공급을 늘리지 않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이 행사는 지금 없다. 은행의 홍보 의도와 달리 기자들이 정보가 되는 기사만 썼으니, 밑지는 장사라고 여겼을지 모른다.
▷인공지능 알파고로 4차 산업혁명의 선두주자로 떠오른 구글은 ‘소비자의 선한 의지’에 의존하는 회사다. 회사 모토가 ‘사악해지지 말자’일 정도다. 창업자 래리 페이지의 심성이 고와서라기보다는 소통하지 않으면 자기 회사의 거대 프로젝트를 도무지 작동할 수 없다는 게 이유다. 지난주 구글이 세계개발자회의에 한국을 포함한 세계 언론과 개발자들을 초청한 것은 구글렌즈라는 신기술에 대한 소비자의 동의를 얻기 위해서였다.
▷아이폰을 만드는 애플에도 시장과의 교류는 중요하다. 그런데도 다음 달 5일 이 회사 주최로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리는 세계개발자회의에 세계 언론을 모두 초청하고도 한국 언론만 뺐다. 행사장 티켓값이 179만 원이나 돼 청탁금지법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는 게 이유라고 한다. 9월 아이폰8 발표회에도 한국 언론은 초청받기 힘들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한국 언론만 ‘애플 불청객’ 신세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어제 애플의 초청 건과 관련해 “청탁금지법에 저촉되지 않을 것”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놨다. 외국기업이 신제품 홍보를 위해 한국 기자를 초청하면서 다른 나라 기자와 같은 수준의 항공권 숙식을 제공한다면 괜찮다는 것이다. 애플이 이런 질의를 했는지 확실치 않지만 애매한 청탁금지법이 혼란의 원인이다. 그제 인사청문회에서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는 “청탁금지법 수정을 검토할 때가 됐다”고 했다. 이 법 때문에 피해를 봤다는 현장과 여론 사이에 접점을 찾는 게 관건이다.
홍수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