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만난 사람]‘한류 전도사 17년’ 방송인 겸 이벤트 MC 후루야 씨
일본은 저작권이나 초상권 규제가 심하다. 그는 수많은 한류 스타와 공동작업을 했지만 그들과 함께 찍은 사진은 단 한 장도 제공할 수 없다고 했다. 한국의 포털사이트에는 그럴싸한 사진들이 꽤 돌아다니는데도 말이다. 15일 도쿄 CJ E&M의 한류정보방송 녹화장에서 만난 후루야 마사유키 씨.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15일 오후 9시 일본 도쿄 니시신바시(西新橋)에 자리한 CJ E&M 저팬의 스튜디오. 후루야 마사유키(古家正亨·43) 씨가 진행하는 한류 정보 버라이어티 방송 ‘M타메방’ 녹화가 시작됐다. 드라마와 K팝, 연예가 뒷얘기까지 최신 한류에 대한 소개가 종횡무진 이어졌다. 월 2300엔(약 2만2900원)을 내는 위성방송 M넷의 유료가입자 7만∼8만 명이 주(主) 시청자 층이다. 한국인과 일본인, 재일동포가 뒤섞인 제작진은 모두가 한류에 관한 한 박사급이다.
후루야 씨는 일본에 한류 붐이 일기 전인 2001년부터 한국 대중문화 소개에 앞장서 ‘한류 전도사’로 통한다. 배용준, 카라, 비스트, 2PM 등 일본에 데뷔한 한국 연예인 대부분이 그를 통해 소개됐다. 그의 직업은 항간에서 말하는 틀에 끼워 맞춰 설명하기 어렵다. 방송인, 이벤트 MC에서 대학교수까지. 생물처럼 움직이는 대중문화의 세계에서 ‘한국’과 ‘대중문화’가 접목된 일은 뭐든지 한다.
이런 그에게 요즘 일본 내 한류 사정을 물었다. 그는 “매스미디어에서는 거의 자취를 감췄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인기는 여전하다. 내가 얼마나 바쁜지 보라”고 답한다. 스케줄 표를 보니 그가 진행한 한류 관련 행사는 4월에만 20회, 5월에도 21회에 이른다. 매니저를 따로 두고 시간관리를 해야 할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후루야 씨는 일본의 기성 한류 팬들에 대해 “건재하지만 숨어서 즐기는 층이 많다”며 “예전에는 카페에 앉아 ‘배용준이 어떻고 이병헌이 어떻고’ 얘기하던 여성 팬들이 더 이상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자신들끼리 ‘비밀결사 같다’는 자조 섞인 말도 한다”고 전했다.
○ 한류의 유통구조도, 문법도 달라졌다
“최근 2, 3년 사이 K팝은 인터넷을 통한 접근이 주류가 됐습니다. TV도 신문도 안 보는 젊은층은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한류를 즐깁니다. 언어의 장벽은 구글 번역기를 돌리면 되고, 최근에는 가사까지 일본어로 번역해 유튜브에 올려주는 친절한 팬들이 많습니다. 과거 대중과 아티스트 사이에 끼어 필터링을 하던 매스컴이란 벽을 (일본) 청년들이 가볍게 뛰어넘어 버린 거죠.”
젊은 한류 팬의 존재감은 19∼21일 도쿄 인근 지바(千葉)에서 열린 한류종합페스티벌 ‘케이콘 2017’에서 실감할 수 있었다. 어디서 알고 몰려왔는지 1년 전 행사에 비해 10대, 20대 젊은층이 엄청나게 늘었다. 도쿄 신오쿠보(新大久保) 코리아타운에서는 교복 차림으로 몰려다니는 일본 여고생들을 심심찮게 만난다. 이들에게 처음 한국문화를 접한 계기를 물으면 십중팔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유튜브라고 대답한다.
○ MB ‘일왕 사죄’ 발언에 일본 여론 등 돌려
일본에서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진 시기는 몇 차례 있었다. 그중에서도 2004년 드라마 ‘겨울연가’가 촉발한 1차 한류 붐과 2010년 ‘소녀시대’ ‘카라’ 등 걸그룹과 함께 온 2차 한류 붐은 일본 문화를 뒤흔들 정도로 강력했다.
“당시 저는 TV 라디오 등 전국 단위의 정규방송 8개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1년 뒤엔 위성방송 하나만 남았습니다. 그것도 2015년에 끝났지요. 십여 년간 해오면서 그때처럼 타격이 컸던 적은 없었습니다.”
후루야 씨는 2012년 사태를 독도 갈등 탓으로만 보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일본인들이 정말 등을 돌린 것은 ‘(일왕이) 한국에 오려면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한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 탓입니다. ‘국내용’ 발언이었겠지만 여과 없이 보도돼 일본인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별별 갈등이 많았어도 일본 언론이 당시처럼 한국을 나쁘게 평한 적은 없었습니다. 솔직히 저도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2년 사태는 일본 우익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줘 그해 12월 총선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민주당을 꺾고 집권하는 데 일조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역사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 권리 지키면서 후퇴한 日 vs 권리 내던져 성공한 韓
“퍼나르기와 파일 공유 확산으로 한국의 CD 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붕괴됐습니다. 이는 세계 아티스트들의 고난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공짜 음악 정서 때문에 풀뿌리 아티스트들이 설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이 택한 방식은 마침 시대의 흐름과 맞아떨어져 K팝 세계화라는 성과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제는 긴 안목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해야 할 겁니다.”
또 하나, 그가 지적하는 변화가 있다. 한국 아티스트들의 인기가 더 이상 ‘한국’과 관련 없이 성립된다는 것이다.
“동방신기나 빅뱅을 한류 스타라고 인식하는 일본인은 거의 없습니다. 그냥 아시아의 스타, 세계의 스타입니다. 6월 말 일본 데뷔를 앞둔 걸그룹 트와이스도 마찬가지죠. 저는 트와이스가 일본에서 카라와 소녀시대에 버금가는 성공을 할 거라고 보지만 그건 그들이 인기 요소를 많이 갖춘 실력 있는 그룹이기 때문입니다. 방탄소년단이 남미에서 인기인 것도 마찬가지죠. 이미 콘텐츠로 평가받는 시대이고 그들이 ‘한국인’이란 것과는 큰 상관이 없습니다. 음악 세계에서 국경은 사라졌어요.”
○ 정치보다 문화 콘텐츠의 힘이 국력
한국행 일본인 관광객은 한일관계가 얼어붙은 2012년을 정점으로 매년 줄다가 2016년에야 약간 회복했다. 반면 일본행 한국인 관광객은 2012년 이후 매년 늘어 지난해에는 한국행 일본 관광객의 두 배 이상을 기록했다.
“한국인이 훨씬 개방적인 거죠. 그래서 평소 양국 국민의 접촉면을 늘려야 합니다. 한국에 대해 잘 모르는 일본인일수록 여론에 좌우됩니다. 아직도 매스컴을 통해 나타나는 한국은 ‘반일 국가’ 이미지여서 ‘한국인 모두가 일본을 싫어한다’거나 ‘무서워서 한국 여행 못 간다’는 일본인이 많은 거죠.”
그는 여기서도 젊은이들에게서 희망을 찾으려 했다.
“기성세대는 여론에 좌우되지만 젊은이들은 다릅니다. 요즘 대학가에서는 한국 관련 학과가 인기 있고 입학 성적도 높습니다. 그런데 전공자들에게 동기를 물어보면 K팝이 계기가 된 경우가 많아요. 이들은 장래에 자신도 한일 간 가교가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엄청난 일 아닌가요. 정치보다 문화 콘텐츠의 힘, 그게 국력이 되는 거죠.”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후루야 마사유키는…
1974년 홋카이도 출생. 홋카이도의료대 간호복지학부를 졸업한 뒤 캐나다로 유학. 우연히 한국인 친구가 선물한 한국 가요 CD를 듣고 그 수준과 음악성에 충격을 받아 1997년 말 무작정 한국행을 감행. 포장마차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충당하며 1년 반 유학 후 귀국. 2001년 홋카이도의 FM ‘노스웨이브’에서 한류 음악 소개 프로그램 ‘BEATS OF KOREA’의 DJ를 시작. 이후 라디오와 TV 진행, 이벤트 진행, 저술, 강연, 대학 강의 등 한국 대중문화와 관련한 일을 섭렵하는 사이 자타가 공인하는 ‘일본 내 한류전도사’로 정착. 2015년 한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주는 ‘제1회 코코로 어워드 한류공로상’ 수상. 2009년 12월 한국인 싱어송라이터 허민 씨와 결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