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한류史
2003∼2004년 NHK를 통해 방영된 ‘겨울연가’는 일본에 ‘욘사마’ 붐과 함께 ‘한류’라는 단어를 정착시켰다. 2004년 11월 나리타공항에 도착한 배용준이 환호하는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아사히신문 제공
NHK는 당초 위성방송의 ‘시간 때우기’용이던 겨울연가가 예상 밖의 뜨거운 반향을 얻자 이듬해 지상파를 통해 다시 방영했다. 이때부터 일본에서 한류 붐이 본격화했다. 겨울연가 ‘대박’을 목격한 다른 민간방송사들도 앞다퉈 한국 드라마를 수입했다. 이때를 제1차 한류 붐이라 부른다.
앞서 2000년 영화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등이 히트해 일본인들이 한국 콘텐츠 수준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됐다. 때마침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열리면서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졌다. 2001년 일본에 데뷔한 가수 보아, 2005년 데뷔한 그룹 동방신기가 현지화된 한국인 가수로서 일본 내 한류 열기 확산에 힘을 보탰다.
후루야 씨의 해석에 따르면 카라와 소녀시대는 일본 음악계에 새로운 아이돌 상을 제시했다. ‘AKB48’처럼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 ‘팬들이 육성하는 아이돌’이 대세였던 일본에서 오랜 훈련을 통해 ‘완성된 스타’로서 등장한 이들은 경탄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2012년 이후 한류는 지상파에서는 자취를 감췄지만 기성 팬들은 물밑에서 ‘조용한 지지’를 이어가고 있다. 카라 출신 한승연이 13일 도쿄에서 가진 팬미팅에는 10만 원 가까운 입장료에도 1600여 명의 팬이 모였다.
한일관계를 오랫동안 지켜봐온 일본인들은 1970, 80년대에 일본에서 활약한 한국인 가수들 역시 양국 간 이해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가령 1976년 등장한 가수 이성애는 ‘일본에서 성공한 첫 한국인 가수’다. 이성애는 한복 차림으로 가요 프로그램에 나와 ‘가슴 아프게’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일본어와 한국어를 섞어 불렀다.
조용필은 1987년 한국인 가수로는 처음으로 NHK의 홍백가합전(紅白歌合戰)에 등장했다. 매년 12월 말일 밤 생방송으로 방영되는 홍백가합전은 그해 1년간 실력과 활동을 인정받은 가수에게만 출연 자격이 주어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조용필은 이후 4년 연속 홍백전에 출연했다. 서울 올림픽이 열린 1988년부터는 계은숙, 김연자 등이 속속 지상파에 등장해 인기를 끌었다. 다만 조용필을 포함해 이들이 일본에서 부른 노래는 모두 ‘트로트’에 한정돼 있었다. 1989년에는 패티김이 가세해 4명이 홍백전 무대에 섰다. 지난해 고인이 된 와카미야 요시부미(若宮啓文) 전 아사히신문 주필은 이때를 ‘한류의 첫 파도’라고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