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규·산업부
최소한 바둑에서 인공지능(AI)이 인간을 넘어섰다는 점은 이제 명백합니다. 하지만 이를 ‘인간의 패배’로 단정하며 우울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인간을 넘어선 AI를 만든 것 자체도 인간입니다. 알파고를 만든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자(CEO)가 스스로 지적했듯, 알파고에 ‘바둑에서 이겨라’라는 목표를 입력하는 것도 인간 자신이죠.
알파고 덕분에 바둑에 대한 연구는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를 맞았습니다. 그 전까지 ‘악수(惡手)’로 평가받던 수들이 재평가되면서 바둑을 보는 인식의 지평이 넓어지고 있습니다. 아마 AI가 적용되는 분야마다 이런 일들이 발생할 겁니다.
이미 남들이 다 개발한 바둑 AI 개발해서 뭐 하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번 ‘바둑의 미래 서밋’에서 허사비스 CEO가 밝혔듯 알파고가 바둑 외에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는 ‘범용 AI’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근시안적인 시각입니다. 이번에 커제와 대결한 업그레이드된 ‘알파고 2.0’은 인간의 기보 없이도 스스로 대국을 두면서 학습한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인간이 데이터를 주지 않아도 학습했다는 특징은 바둑 이외의 분야에서도 활용할 여지가 큽니다. 이전 알파고에 비해 전력소비량을 크게 줄인 것도 다른 분야 AI 개발의 노하우가 될 수 있습니다.
다행히 한국에서도 ‘돌바람’을 뛰어넘는 바둑 AI를 만들려는 연구자들이 있고, 카카오의 AI 자회사 ‘카카오브레인’이 이달 한국기원과 바둑 딥러닝 연구에 협력하기로 하는 등 관련 움직임이 일고는 있습니다. 국산 AI가 국제 바둑대회에서 우승하는 날이 오길 기대합니다.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