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딥마인드사가 제작한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가 이세돌 9단에 이어 세계 랭킹 1위 중국의 커제((柯潔) 9단에게도 3연승을 거두며 인간 바둑이 넘기 힘든 강자임을 확인하며 세계 바둑계를 흔들어 놓은 뒤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알파고는 27일 중국 저장(浙江) 성 자싱(嘉興) 시 우전(烏鎭) 진 세계인터넷회의중심에서 열린 ‘바둑의 미래 포럼’ 행사 중 커 9단과의 3번기 마지막 대국에서 흑 209수만에 불계승을 거뒀다. 이로써 커 9단은 23일과 25일에 이어 3연패했다. 커 9단은 이날 바둑 형세가 나빠지자 갑자기 대국장을 떠나 화장실에서 울다 돌아온 뒤에도 흐느끼는 장면이 행사장 대형 화면을 통해 전해졌다.
● 커 9단 “승산없는 알파고와의 대국, 큰 고통” 토로
그는 “대국에 져서 죄송하다. 좀 더 잘 두었어야 되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낮은 목소리로 고개 숙이며 자책하기도 했다. 1, 2국이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는 비교적 밝은 표정이었던 커 9단이 이날 얘기 도중 목이 메여 잠시 말을 잇지 못하자 참석자들은 30여 초간 박수를 치며 위로와 격려를 보냈다. 커 9단은 “오늘 대국은 포석에서 스스로 생각해도 받아들이기 힘든 악수를 뒀다”며 “밤에는 잠도 제대로 못자고 알파고에 어떻게 대응할 지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포털 신랑(新浪)망은 “그가 아직 어린 19살 소년(1997년 8월생)이다. 질 수도 있는 나이다”며 응원했다.
그가 제한시간 1시간여를 남기고 갑자기 대국장을 나갔다 눈이 충혈된 채 10여분 만에 돌아온 것에 대해 커 9단의 아버지 커궈판(柯國凡) 씨는 저장TV와의 인터뷰에서 “화장실에 달려가 울었던 것 같다”며 “잠도 못자고 바둑 형세도 좋지 못해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알파고의 인간 기사와 공식 대국 전적은 이세돌 9단과 5번기, 연초 인터넷 대국 60판 그리고 이번 행사에서 커제 9단과의 3번기와 단체 상담기를 합쳐 모두 68승 1패로 남게 됐다. 이세돌 9단의 1승이 인류가 알파고를 상대로 거둔 유일한 승리가 됐다.
중국바둑협회는 이날 알파고에게 ‘프로기사 9단’ 칭호를 부여했다. 중국의 43번째이자 최소연 9단이라고 중 언론은 전했다. 커 9단의 스승이자 ‘중국의 기성’으로 불리는 녜웨이핑(¤衛平) 9단은 “인간이 알파고와 대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착각이었다”며 “알파고는 최소 프로 20단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오후 대국이 끝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알파고는 영원히 무대에서 사라져 다시는 바둑 대국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알파고는 세계 정상 기사들과의 대국을 통해 희망했던 정점에 도달했기 때문에 이번이 마지막으로 참가하는 시합이 될 것”이라고 은퇴 이유를 설명했다. 바둑계는 ‘알파고 사범’의 새로운 기보를 볼 수 없게 된 것에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다.
허사비스 CEO는 “알파고 연구팀은 앞으로 과학자들이 암 등 질병 치료, 에너지 소모 감축, 혁신적인 신소재를 찾는 등 보다 크고 복잡한 과제를 해결하는 것을 돕는데 모든 정력을 쏟아 부을 것”이라고 말했다. 알파고가 더 이상 바둑에 특화된 AI가 아닌 범용 AI로 진화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이다. 허사비스 CEO는 “이번 대국은 AI의 최고수준을 보여줘 인류가 AI를 도구로 삼을 수 있다는 잠재력을 확인한 것”이라며 “앞으로 인류가 새로운 지식영역을 개척하고 진리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돕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구글 측은 이날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 대국 이후 스스로 강화학습을 위해 벌였던 ‘셀프 대국’ 기보 50판을 매일 10판씩 공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기보를 먼저 본 스웨(時越) 9단은 “여태까지 본 적이 없는 상상만 하던 저 먼 미래의 대국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딥마인드는 또 바둑 애호가들의 기력 향상을 위해 알파고가 두었던 수를 기초로 ‘바둑 지도 도구’를 개발하고,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 대결 이후 업그레이드된 진화 과정을 논문으로 작성할 계획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