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직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전 한국증권학회장
새 정부가 초기부터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일자리를 늘리는 일이라면 국민 누구라도 좋아하고 지지할 국정 과제다. 문제는 일자리의 양과 질을 개선하는 데 필요한 재원이다. 세부적인 내용은 다르겠지만 대체로 공공부문이나 대기업은 세금이나 내부유보금 등을 활용해 정부 정책에 호응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성적인 자금 부족 상태인 중소·중견기업이나 스타트업 등은 고용 여건의 악화가 불가피하고, 이로 인한 중소기업 기피 현상 심화와 기존 인재 이탈 가능성 등 악순환이 생길 수 있다. 자칫 일자리 양극화를 해소하고 균형 잡힌 고용환경을 만들자는 정책 취지가 훼손될 수도 있다.
다행히 새 정부는 이 문제를 시장 관점에서 해결할 수 있는 ‘신의 한 수’를 쥐고 있다. 시행을 앞두고 있는 초대형 투자은행(IB)이다. 초대형 IB 제도가 시행되면 증권사의 ‘발행어음’ 시장이 열리게 된다. 발행어음은 증권사가 투자자들에게 원리금을 보장하는 어음을 발행해 자금을 모으고, 이를 은행 대출이 어려웠던 기업에 대출 등으로 제공하는 제도다.
증권사들은 발행어음의 수익률을 은행 금리보다 경쟁력 있게 제시하기 위해 자금이 필요한 좋은 기업을 발굴하게 된다. 발행어음은 자기자본의 2배까지 발행하고, 이 중 절반을 기업대출 등 기업금융으로 활용하도록 되어 있다. 현재 초대형 IB를 준비 중인 5개 증권사의 자기자본은 지난해 말 기준 약 23조6700억 원. 5개 사가 모두 인가를 받으면 증권사가 기업에 제공할 수 있는 자금은 정부가 계획 중인 일자리 추경의 배가 넘는 23조 원에 달한다. 세금이 아닌 민간의 자발적 금융투자로 조성된 자금이라 재정 부담도 없다.
이 돈은 일자리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인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에 흘러드는 생명수 역할을 할 것이다. 기업 자금 조달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일자리의 양과 질을 높이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증권사의 발행어음을 사들인 투자자는 은행보다 높은 고정금리를 받을 수 있다. 부동화됐던 민간의 금융자금이 초대형 IB를 통해 일자리 창출의 종잣돈이 되는 선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하지만 최근 초대형 IB 시행을 앞두고 증권사 당사자의 사회적 신용, 대주주 결격 등의 이유로 발행어음 인가를 미룰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 이유들이 심각한 결격 사유라기보다 해석의 문제라고 한다.
발행어음 사업을 못 하게 할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면 감독 당국은 좌고우면할 필요가 없다. 초대형 IB라는 초대형 일자리 창출 기회를 제대로 살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김명직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전 한국증권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