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김희만 ‘100원회’ 회장
김희만 100원회 회장은 2008년 퇴직하면서 구입한 1t 트럭을 지금도 몰고 다닌다. 주말에 트럭을 타고 골목길을 누비고 다니며 재활용품을 수거해 판매 수익금을 100원회에 보태고 있다. 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14일 광주 광산구 서창농협 3층 회의실에서는 ‘100원회’가 주최하는 ‘제18회 모범청소년 장학금 전달식’이 열렸다. 이날 100원회는 대학생 9명(30만 원씩), 중고교생 16명(20만 원씩) 등 26명에게 620만 원을 전달했다. 100원회는 매일 100원짜리 동전을 모아 묵묵히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모임이다. 1999년 결성된 이후 지금까지 대학생 196명, 중고교생 779명 등 총 975명에게 1억5390만 원의 장학금을 줬다. 한마디로 ‘십시일반(十匙一飯)’의 힘이다.
○ 100원짜리 동전으로 만든 작은 기적
18년째 100원회를 이끌고 있는 김희만 회장(69)이 설파하는 ‘동전의 미학’이다. 100원회가 결성된 1999년은 외환위기의 한파로 서민 가정이 파탄 나던 어려운 시절이었다. 당시 광주 서구청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김 회장은 우연히 ‘군대에서 휴가 나온 아들에게 먹이려고 쇠고기를 훔친 홀어머니가 구속됐다’는 신문기사를 봤다. 어린 시절 배고픔을 겪었던 그는 가슴 한쪽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하면 벼랑 끝으로 내몰린 주변의 이웃들을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다 책상 서랍에 쓸모없이 뒹굴던 100원짜리 동전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사정이 어려워도 누구에게나 100원은 있을 텐데…. 많은 사람이 날마다 100원씩만 모으면 끼니 걱정을 하는 이웃에게는 큰 힘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김 회장은 곧장 생활정보지에 ‘하루 100원으로 불우이웃을 도울 분을 찾는다’는 한 줄짜리 광고를 냈다. 그의 진심 어린 호소가 통했는지 한 사람 두 사람 “나도 도울 수 없겠느냐”며 동참자가 생겼다. 그해 4월 광주에 사는 60여 명이 모여 100원회 창립 모임을 열었다. 이들은 매일 100원씩 저금한 돈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기부해 어려운 처지의 이웃을 위해 쓰기로 약속했다.
100원회의 종잣돈은 김 회장의 개인 돈으로 출발했다. 제4회 광주전남 환경대상에서 받은 상금 50만 원을 쾌척한 것이다. 그렇게 작은 발걸음을 뗀 100원회는 첫해에 370만 원을 모았다. 그리고 3년 후부터는 연간 기부액이 1000만 원을 넘어섰다.
100원회는 한 푼 두 푼 모은 돈을 매년 5월 소년소녀가장과 다문화가정 자녀, 가정 형편이 어려운 중고교생 및 대학생에게 장학금으로 건네며 희망의 버팀목이 됐다. 이들 외에도 100원회가 돌본 이웃은 무수히 많다. 어려운 사람들의 의료비와 생활비로 600여만 원을 지원했고 1200만 원을 들여 노인 585명에게 영정을 만들어줬다.
○ 일회성 아닌 마음의 기부
김 회장은 2008년 정년퇴직을 하면서 1t 트럭을 구입했다. 폐지나 빈병, 캔 등을 수집해 내다 팔아 100원회에 보태기 위해서다.
“매달 보내오는 회원들의 정성이 눈물겹게 고마워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었어요. 주말이면 차를 끌고 다니며 부녀회 등에서 모아준 재활용품을 수거하고 직접 골목을 누비기도 합니다. (제가) 한 푼이라도 더 보태야 100원회가 튼실해질 수 있으니까요.”
김 회장이 부지런히 재활용품을 모아서 버는 돈은 한 달 6만 원 정도. 이는 100원 회 회원 20여 명이 내는 월회비와 맞먹는 금액이니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게 김 회장의 생각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얼굴은 ‘뙤약볕 농부’처럼 구릿빛이었고 그의 손은 막노동꾼처럼 거칠었다.
“우리 모임은 금액과 기부 방식 대신 ‘하루 100원’이라는 정성을 강조합니다. 형편이 좋을 때는 더 많이, 형편이 어려울 때는 조금 적게. 그러다 보면 끝까지 기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거지요. 그게 모임을 지탱하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원 대부분은 본인도 넉넉지 않은 서민들이다. 이들은 하루에 100원씩 모아 더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을 주면서 자신들의 100원이 형편이 넉넉한 누군가의 1000원, 1만 원보다도 더 큰 의미를 갖는다고 자랑스러워한다.
회원 중에는 도움을 받던 처지에서 벗어나 당당한 후원자가 된 사람도 많다. 100원이 아름다운 릴레이 기부의 씨앗이 되고 있는 셈이다.
“스스로 몸을 가누기도 힘든 시각장애인이 회원으로 가입하고, 공공근로를 하면서 돈을 보내오는 할머니도 계세요. 돈의 가치는 액수보다 어떻게 쓰느냐에 달렸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김 회장은 “회원들의 아름다운 마음씨는 어려운 분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모닥불 같다”며 “제 얼굴도 모르면서 100원회를 믿고 수년째 후원금을 보내주는 회원들이 있는 한 100원의 기적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나이지만 그에게는 또 하나의 꿈이 있다. 무료급식소나 사랑의 밥차를 운영하면서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일이다. “푼돈이라 생각했던 100원에 진심이 담기면 할 수 있는 일이 참 많아요. 티끌 같은 정성이 한데 모아지면 때론 태산 같은 감동을 줄 수 있으니까요.”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