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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만난 사람/이철희]“사드 국회 비준, 한미동맹 어렵게 만들텐데 이해하기 어렵다”

입력 | 2017-05-29 03:00:00

한승주 前 외무장관·주미대사




김영삼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각각 초대 외무부 장관과 주미대사를 지낸 한승주 고려대 명예교수. 2005년 주미대사를 마치고 귀국할 때 마침 주한 미국대사도 이임한 직후였는데 당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그에게 “혹시 (주한 미국대사에) 관심 있으십니까”라고 농담을 했다고 한다. ‘반미 대통령이 임명한 친미대사’로서 고전해야 했던 그가 최근 펴낸 회고록 ‘외교의 길’의 한 대목이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이철희 논설위원

《 문재인 정부 새 외교안보팀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대통령특보 등 이른바 대북 대화파 중심의 인선이 진행되면서 미국의 제재 움직임과 엇박자를 내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소리가 나온다. 과거 노무현 정부가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사사건건 갈등을 빚었던 시절을 떠올리는 이도 많다. 김영삼 정부에서 초대 외무부 장관, 노무현 정부에서 초대 주미대사를 지낸 한승주 고려대 명예교수(77)가 회고록 ‘외교의 길’을 출간했다. 1994년 1차 북핵 위기, 2003년 2차 북핵 위기 때 최일선 외교 현장에 있던 북핵 외교의 산증인이다. 그는 책에서 장관 땐 북한에 강경책을 주장하는 김영삼 대통령과 온건책을 선호하는 빌 클린턴 정부 사이에서, 거꾸로 대사 땐 부시 행정부의 강경책과 노무현 정부의 온건책 틈새에서 고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문 대통령 균형 잡힌 외교해법을

―지금까지의 외교안보팀 인선을 보면 노무현 정부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누가 어떤 포지션에 임명됐느냐는 것보다는 누가 무엇을 하느냐, 또 팀이 있다면 그 팀과 체제가 어떻게 운영되느냐, 누가 어떻게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지가 관건이다. 그런 면에서 아직 골격이 드러나지 않았다고 본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대체로 이념에 편향되지는 않은 것 같다.”

한 전 장관은 회고록에서 “노무현 정부 초 청와대에서 외교안보를 담당하는 사람이 세 명(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 나종일 국가안보보좌관, 반기문 외교보좌관)이나 있어 노 대통령이 ‘골치 아파서 못 살겠다’고 토로했다”고 썼다. 대북정책도 외교부가 아닌 청와대가 주도하고 외교부는 소외되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에겐 북핵 경험이 없다.

“노 대통령은 초기 윤영관 외교부 장관을 기용했다. 누가 들어오든 소위 자주파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지 않겠느냐 생각했을지 모른다. 윤 장관이 자기주장을 안 할 걸로 봤는데 노 대통령도 나중엔 실수했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워싱턴에서 ‘탈레반’이라고 불렸던 자주파와 갈등을 빚은 윤 장관은 1년이 채 안 돼 경질됐다.)

―통일외교안보 특보도 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과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2명이 임명됐다. 옥상옥(屋上屋)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그 두 사람도 어떻게 쓰느냐가 문제다. 그 사람들이 컨트롤타워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아무래도 뱃사공이 여럿이 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새 정부가 햇볕정책 계승을 천명하고 있고, 외교안보팀에도 대화파 일색이다.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얘기도 나온다.

“햇볕정책은 이행 과정에서 북한에 어떤 혜택을 제공하느냐에 문제가 있었다. 서독도 동독에 차관도 주고 원조도 했지만 언제고 필요할 때 발을 뺄 수 있는 합의만 했다. 개성공단 같은 불가역적(irreversible) 약속을 해선 안 됐다. 최악의 경우 서독에선 돈을 좀 떼이면 되는 것이었지만 개성공단은 사람이 인질로 될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정책 방향은 어때야 하나.


“문 대통령도 그동안 얘기해 온 자신의 견해가 있겠지만 대통령이 된 만큼 그동안 믿었던 게 다 옳다고 속단하거나 고집할 일은 아니다. 좀더 넓은 시각에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생각을 가져야 한다. 사람들을 폭넓게 만나 해법을 찾는 데 시간을 쓸 필요가 있다.”

美, 北 ICBM저지로 끝낼지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새 대북정책 ‘최고의 압박과 개입(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을 어떻게 평가하나.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선언이 완전한 검토·분석을 거친 결과물로서 하나의 연결된 전략으로 심사숙고해서 나온 전략은 아니지 않나 싶다. 특히 인게이지먼트(개입)의 뜻은 광범위하고 모호하다. 한편으로 협상도 하지만 어떤 것에 몰두해 관심을 집중시킨다는 뜻이다. 대화나 협상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관심을 갖고 매달린다는 뜻에서 썼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핵·미사일 동결에서 북과 대화를 시작하자는 인식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도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 지금 단계에서는 일단 동결로 시작하자는 것인데, ‘북핵 완전 폐기’를 포기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을 두고 결국 제재를 풀어주든지 늦춰주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미국도 국무장관 말이 다르고 유엔 대사 말이 다르다. 원래 트럼프 대통령이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미국과 우리의 이익이 엇나갈 수 있다.”

―우리 국익과 엇나갈 수 있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미국으로서는 가장 큰 위협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다. 버락 오바마 정부까지도 완전 폐기를 원칙으로 했는데, 이제 미국이 북한에서 ICBM을 안 하겠다고 확약 받는 대신 동결 수준에서 멈추고 제재를 풀어준다는 딜(deal)이 이뤄졌을 때 우리는 어떻게 되겠나. 우리로서는 북한이 가진 핵과 미사일 자체가 위협이다. 미국이 중국과의 레버리지를 ICBM 개발을 막는 데 소진하면 우리가 만족할 만한 해결이 안 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이 동결 수준에서 손 털고 나갈 수도 있다고 보는가.

“트럼프 대통령 성향으로 봐서는 그럴 수도 있다.”

―협상의 출발은 동결일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도 나온다.

“빵 10개 얻으려다 하나도 못 얻느냐, 다 잃는 것보다 반쪽이라도 얻는 게 나으냐는 문제일 수 있다. 동결을 전제조건으로 한다면 그것에 어떤 반대급부를 부여하느냐에 한미 간 철저하고 긴밀한 협의가 있어야 한다.”

첫 韓美 정상회담 신뢰가 중요

―당장 문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클린턴이나 부시 전 대통령도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점잖은 사람이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사람이다. 그가 생각하는 미국의 이해, 그의 성품이 어떤지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정상회담으로 여태 안 풀리던 문제를 푼다든지, 없던 약속을 받아내긴 어렵다. 서로의 됨됨이를 파악하고 인간적 관계, 가능하면 신뢰관계를 조성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특히 첫 회담에서는 귀국해서 이런 걸 얻어냈다고 자랑하는 데 급급하지 않아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장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증액,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도 요구할 것이다.

“이런 문제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처럼 배치하느냐 안 하느냐는 가부의 문제가 아니고 얼마나 올리느냐의 문제여서 협상의 여지가 있다. 정치적으로는 너무 많이 증액한다고 비판이 나올 수는 있겠지만 증액 자체를 반대한다는 얘기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어땠나. 지금과 비슷한 상황인데….

“노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 때 비록 외교 아마추어였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조언을 잘 가려서 듣고 소화해 꽤 생산적인 회담을 했다.”(노 전 대통령은 첫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에 대해 부정적 언급을 하자 “나도 김정일을 생각하면 짜증이 납니다”라고 맞장구를 치기도 했다고 한다.)

―실제로 ‘반미(反美)면 좀 어떠냐’던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친미적 정책을 펼 수밖에 없었다. 책에선 ‘대통령이 진보 진영 출신이어서 오히려 유리한 입장이었다’고 썼는데….

“만약 이명박 대통령 때 이라크 파병이 결정됐다면 어땠을지 상상해 보라. 반대세력이 거리에 드러눕고 자해하고 요란했을 것이다. 나는 당시 미국 쪽에 그런 점을 강조했다. ‘노 대통령의 언사가 과격하기 때문에 바로 이렇게 좋은 행동도 나올 수 있다’고 얘기했다.”

실용주의 외교가 살길이다

―한때 미중이 밀월관계였지만 미군이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에 들어가고 중국은 대북제재에서 발을 빼려는 분위기도 보인다.

“미국도 중국도 서로 상대방을 결정적으로 자극하지 않으면서 강하게 나오는 척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각각 국내(정치)적 입장이 있고 군부가 있으니 양쪽을 어루만지며 만족시키는 조치를 취한다고 볼 수 있다. 미중 밀월 시기가 끝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드 문제 해결이 당장 현안이다.

“중국이 이 문제로 계속 몽둥이를 휘두를 수는 없는 만큼 명분을 찾아 해결책을 찾으려 하겠지만 갑자기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사드 배치는 한국의 결정이기도 하지만 미국의 안보이익과 직결된 문제다. 우리도 중국을 납득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미중 간 양해가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다.”

―새 정부는 사드 배치의 국회 비준을 추진할 방침이다.


“국회 비준은 한미 동맹을 어렵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텐데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영토를 넘겨주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미군을 증강한다든지 다른 무기가 들어올 때마다 국회 비준을 해야 한다면 정부가 어떻게 일을 할 수 있겠는가.”

―4월 ‘한반도 전쟁 위기설’이 나왔을 때 누구나 1994년 1차 북핵 위기를 떠올렸다.

“1994년에는 북한의 핵폭탄 자체가 없었고 미국의 선제공격 성공 가능성은 지금보다 훨씬 컸다. 그런데 지금은 선제공격을 할 경우 북한이 죽자 사자 덤비면서 주일 미군기지와 남한을 공격하면 피해가 클 수밖에 있다. 4월 위기설은 결국 미국과 북한이 서로 근육을 과시하는 경쟁이었다.”

한 전 장관은 한때 외교 무대에서 직접 ‘선수’로 뛰기도 했지만 50여 년간 대학에서 국제정치와 외교를 연구한 학자다. 그는 우리가 갈 길은 ‘실용주의 외교’라고 강조한다.

―역대 대통령 중 실용의 리더십을 보인 ‘외교 대통령’을 꼽는다면….


“사실 6·25전쟁을 겪고 냉전체제 속에서 실용외교를 구사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냉전 종식과 더불어 노태우 대통령은 북방정책을 통해 이념을 초월한 실사구시 외교를 추진할 수 있었다. 소련 중국과의 수교, 유엔 가입 등은 실용외교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정치적인 쇼를 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중요한 결정을 하는 게 바로 실용외교일 것이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