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작가 줌파 라히리(왼쪽)와 김성근 전 한화 감독.
하정민 디지털뉴스센터 차장
벵골어는 방글라데시와 콜카타를 중심으로 한 인도 동부의 주 언어. 우리 눈에는 인도 최대 언어 힌디어와 비슷하지만 문자 표기법과 발음이 완전히 다르다. 그는 늘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했다. ‘질병의 통역사(Interpreter of maladies)’ ‘동명이인(The namesake)’ 등 히트작에 담긴 화두도 언제나 “벵골인도 인도인도 미국인도 아닌 나는 누구인가”였다.
라히리는 2015년부터 이탈리아어로 글을 쓴다. 자신을 문학계의 총아로 만들어준 영어라는 도구를 깨끗이 버렸다. 안정감은 창작의 독이며 익숙한 영어가 자신을 타성에 젖게 한다는 이유다. “변신은 격렬한 재생이자 탄생이다. 또 불완전은 발명, 상상력, 창조성에 실마리를 준다. 불완전하다고 느낄수록 더욱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23일 한화 이글스 감독에서 물러난 ‘야구의 신(野神)’ 김성근 전 감독. 일본 교토에서 재일교포 2세로 태어난 그는 평생을 편견과 싸웠다. 반(半)쪽발이, 극단적 스몰 볼, 혹사 논란, 독선적 운영 방식…. 그럼에도 한국시리즈에서 3회 우승, 2회 준우승을 차지했고 약체였던 SK 와이번스를 2000년대 후반 한국 프로야구 최강팀으로 만들었다.
그는 선발투수 로테이션 변경, 불펜 투수 및 야수 보직 파괴 등 기기묘묘한 용병술로 유명했다. 선발투수가 공 1개만 던지고 내려가고, 3루수가 포수 마스크를 쓰고, 투수가 타석에 등장했다. ‘전문화·분업화가 보편화된 현대 야구에 안 맞는다’는 논란이 거셌지만 성적으로 이를 잠재웠다. ‘SK 왕조 건설’은 부인할 수 없는 그의 업적이다.
딱 거기까지였다. 그가 3년 반의 야인 생활을 거쳐 2015년 시즌부터 한화 지휘봉을 잡았을 때 한국 야구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경기 수가 대폭 늘었고 2군이나 3군에서 체계적으로 젊은 선수를 키워 1군에 올리는 육성 시스템(farm system)도 정착됐다. 속속 등장한 40대 젊은 감독들은 선수단 및 프런트와의 소통에 공을 들였다. 뛰어난 개개인의 역량보다 체계적 운영이 더 중요한 현대 야구에서 리더의 절대적 권능과 카리스마를 중시하는 70대 노감독의 자리는 없었다. 그의 방식은 SK 시절과 똑같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비단 김 전 감독뿐일까. 노키아, 코닥, 모토로라, 블록버스터 등 쟁쟁한 세계적 기업들도 자신의 약점이 아닌 강점 때문에 몰락했다. 화려한 영광을 가져다준 과거 성공 방식만 고수하다가 외부 변화에 대응하지 못했고 ‘성공의 덫(success trap)’에 빠져 자멸했다.
하정민 디지털뉴스센터 차장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