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훈 출판평론가
우리 역사에서는 조선 중중 때인 1541년 박세무가 편찬한 ‘동몽선습(童蒙先習)’이 대표적인 초등 교과서로 일컬어진다. 김안국 민제인 등이 편찬했다는 설도 있는 이 책은 서당에서 초보 학동들이 반드시 읽어야 했다. 내용의 절반 이상은 한국사와 중국사여서 수신(修身)과 역사 과목을 겸했다고 할 수 있다.
이 땅에서 최초의 근대적 교과서는 갑오개혁 중이던 1895년에 나온 ‘국민소학독본(國民小學讀本)’이다. 일본 ‘고등소학독본’을 우리 실정에 맞게 개정한 책이다. 1910년 일제 총독부에 의해 발매 금지당한 비운의 교과서이기도 하다. 광복 이후 첫 교과서는 미 군정청 학무국이 1946년에 펴낸 한글 첫걸음, 국어독본, 공민, 국사, 음악, 습자, 지리 교과서였다.
“산골 작은 마을이어서 집에 책이 있을 리 없었다. 마을에서 교과서 외에 책을 본 기억이 없다.” 1948년생 김용택 시인의 회고다. “들에는 고운 꽃이 피어 있습니다. 정희는 꽃을 5송이 꺾었습니다. 그중에서 2송이는 동생을 주었습니다. 몇 송이 남았습니까?” 김용택 시인이 배웠을 1950년대 중후반 초등 2학년 산수 교과서 내용이다.
교과서는 교육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다음 세대에게 전하려는 지식과 규범, 세계관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내용일 뿐만 아니라 그 형식과 제도가 한 시대의 사회 현실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는 프랑스 사상가 토크빌의 말에서, ‘정부’를 ‘교과서’로 바꾸어도 뜻이 통한다.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