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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의 과학 에세이]심장이 뛰고 술 깨는 것 모두 효소 덕분

입력 | 2017-05-30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김재호 과학평론가

아까 먹은 점심이 좀 과했나 보다. 속이 더부룩하다. 소화가 덜 되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그 구체적 원인은 소화효소 때문이다. 술을 많이 마신 다음 날 숙취 때문에 고생하는 이유 역시 분해효소 때문이다.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소가 잘 작동하지 않아 내 몸에 이상이 생기는 것이다. 역시 과한 건 좋지 않다. 적당히 먹고 마셔야 효소가 제대로 일을 한다.

잘 알려진 아밀라아제 효소는 밥을 분해한다. 이 효소가 없으면 밥은 영원히 밥으로 남는다. 즉, 밥이 썩지 않아 탄수화물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특정 음식에 대한 소화효소가 부족하면 음식이 분해되지 않고 그대로 몸속에 남는다. 속이 불편한 이유다. 알코올이 효소에 의해 분해되지 않고 몸속에 너무 많이 남아 있으면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다. 효소는 이처럼 소중한 존재다.

우리 모두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몸에서 효소의 반응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몸속의 효소는 5000종 이상이다. 밥이나 술을 소화시키고 분해하는 것 외에 세포 재생, 항체 형성, 배설 등 많은 일들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지금 엄청난 양의 화학반응이 우리 몸의 세포에서 윙윙거리고 있는 것이다. 각자가 잘 느끼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이러한 반응 없이 생물은 살 수 없다.


그런데 효소가 단지 소화시키거나 분해하는 것만이 아니라고 한다. 효소가 세포의 소통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그 주인공은 바로 산화질소 합성효소(NOS1)와 단백질 분자를 인산화하는 효소(PKC)다. 이 두 효소는 뇌의 뉴런에서 신호 전달의 다양한 과정뿐만 아니라 많은 신체기관의 세포 간 소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둘 다 세포막에서 작용하는 효소들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독일 프라이부르크대 연구진이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밥을 소화시키거나 알코올을 분해하는 건 효소다. 하지만 효소가 작용할 수 있는 건 세포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효소는 세포 내에서 만들어진다. 더 나아가 효소가 있어야 또 다른 효소가 만들어질 수 있다.

신경세포인 뉴런들 사이에는 전기 신호와 화학 신호가 일어난다. 뉴런처럼 세포들도 소통해야 한다. 이는 효소들과 칼슘 채널(칼슘을 세포 내외로 이동시키는 구멍)에 의해 가능하다. 두 효소 NOS1과 PKC는 세포막에서 신호를 활성화하여 세포 간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칼슘 이온이 세포질로 들어올 때 두 효소와 결합된다. 이때 효소들은 활성화한다. 두 효소는 이 과정에서 산화질소를 퍼뜨리거나 특정 단백질을 인산화시켜, 즉 화학 신호를 보냄으로써 세포가 소통하게끔 한다. 단백질 슈퍼복합체는 세포막으로 전달된 다른 세포의 전기 신호를 세포 내 화학 신호 과정으로 재빠르게 변환시키는데, 이 두 효소가 복합체와 함께 일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들 효소가 잘 작동을 해야 세포골격 조작, 세포 증식, 분화 조절 등이 일어난다.

세포가 소통을 해야 심장이 뛰고, 반딧불이 빛을 내고, 충치가 제거된다. 술을 마신 후 두통이나 구토가 없는 것은 효소로 인한 세포의 소통이 활발히 일어나고, 알코올이 잘 분해되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정자가 난자에 접근하거나, 난자의 세포막을 찢는 수정에도 효소가 필요하다. 정자에만 40종 이상의 효소가 들어 있다. 효소가 부족하면 모든 신체조직의 기능이 떨어지고, 각종 질병들이 나타나게 된다. 예를 들어, 적혈구 막에서 ATP를 만드는 효소가 부족하면 빈혈이 일어난다. 또한 몸에 들어온 진드기 잔해물을 분해하는 효소가 부족하면 폐렴에 걸릴 수 있다.

효소는 대부분 단백질인데, 우리 몸 안에서 만들어진다. 효모는 발효를 하는 미생물이다. 효소는 동물과 식물뿐 아니라 미생물에게도 있다. 효모 역시 미생물이기에 효소를 가지고 있다. 만약 돌연변이나 외부 요인으로 DNA가 손상을 입으면 엉뚱한 효소가 만들어지고, 치명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다행히 몇몇 효소는 DNA가 손상되는 것을 다소 막는다. 효소는 어쩌면 생명체를 지구에 탄생시키고 보호하기 위해 나타난 존재일지도 모른다.

리보자임이라는 효소가 있다. 한 가닥 RNA 사슬이 접혀 만들어진 효소다. 신기하게도 리보자임은 유전 정보를 가지면서 동시에 효소로 작용한다. DNA와 효소 기능을 모두 하는 것이다. DNA와 효소 하나라도 없으면 생명이 만들어질 수 없는 상태에서, 리보자임의 존재는 신비롭다. 소통하는 세포를 만들고 생명이 살아가기 위해 효소의 존재와 효소의 소통은 매우 중요하다.

김재호 과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