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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버스노선 분할 ‘민원 폭탄’에 스톱

입력 | 2017-05-30 03:00:00

서울시 노선조정 차질 빚어
왕복 4시간 20분 노선 쪼개려 하자… 주민들 “집값 떨어진다” 민원 공세
지역구 의원이 조정 중단 요청해와





‘다 같이 민원 폭탄 넣읍시다!’

올 초 인터넷 커뮤니티 버스 관련 게시판에 올라온 글의 제목이다. 서울시의 462번 버스 노선 단축안에 반대한다는 이 글에는 ‘시간 날 때마다 민원을 넣겠다’ 같은 댓글 수십 개가 달렸다. 실제로 온라인 홈페이지나 전화를 통한 민원이 쏟아지면서 2월 25일 시행할 계획이던 노선 단축은 미뤄졌다.

장시간의 운전으로 운전사의 피로가 누적돼 승객 안전이 위협받고, 장거리 노선으로 승객이 너무 많이 타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지난해 12월 서울시가 내놓은 장거리 버스 노선 단축·분할 계획이 ‘민원 폭탄’으로 차질을 빚고 있다. 29일 서울시에 따르면 조정 대상인 운행거리 60km 이상 27개 노선 중 분할이나 단축된 것은 163번과 351번(342번으로 변경), 505번 3개 노선에 불과하다.

서울시 관계자는 “해당 노선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불편해질 수밖에 없어 민원이 제기될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일부 노선은 업무를 제대로 못 할 정도로 심각하다”고 말했다. 계획대로 내년까지 27개 노선을 모두 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우려도 나온다.

462번 버스는 서울 송파구 장지동 송파공영차고지를 출발해 경기 성남시와 강남구 강남대로, 동작구 흑석동을 거쳐 영등포역까지 왕복 78km를 오간다. 1회 평균 운행시간은 4시간 20분이나 된다. 고속버스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시간을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리는 셈이다. 서울시는 회차(回車) 지점을 영등포역에서 흑석역으로 앞당기는 노선 단축 계획안을 세웠다. 그러나 영등포역에서 타고 내리던 승객들의 반발이 거세 미뤄진 것이다.


주민의 민원을 받은 지역구 국회의원이 서울시에 직접 조정을 하지 말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경기 파주시를 출발해 고양시를 거쳐 서울 도심까지 운행하는 703번, 706번의 경우, 기점인 파주시 지역구 윤후덕 의원이 윤준병 서울시 도시교통본부장을 만나 단축 운행을 보류해 달라고 요청했다. 해당 구간의 노선 단축은 미뤄졌다. 파주시 교하동과 서울역을 오가는 706번은 왕복 운행거리가 100km에 이르는 최장거리 노선버스다.

이 같은 현상은 고질적인 지역 이기주의의 발로라는 지적이 나온다. 시 관계자는 “현재 서울시의 간선버스가 비정상적으로 늘어난 배경에는 자기 집 근처에도 도심으로 연결되는 노선이 있어야 한다는 강력한 민원이 있다”며 “이를 바로잡으려는 작업 역시 민원에 부딪히고 있다”고 탄식했다. 단순히 불편해서뿐만 아니라 도심으로 직행하는 버스 노선이 있느냐에 따라 부동산 가격이 영향을 받는다는 점도 민원 폭증의 이유로 꼽힌다.

일부에서는 주민과 충분한 협의 없이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경기 지역에 사는 김상재 씨(55)는 “대부분의 장거리 버스는 10년 넘게 주민들이 출퇴근용으로 애용하는 노선”이라며 “이를 공청회나 사전 안내도 없이 일방적으로 줄이겠다면 누가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겠냐”고 반박했다.

서울시 도시교통본부 측은 “시민들의 의견과 함께 교통카드 데이터를 비롯한 객관적인 통계를 반영해 다수 시민의 편익에 맞는 조정안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