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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기타의 제왕’ 안드레스 세고비아의 연주

입력 | 2017-05-30 03:00:00


세고비아라는 이름을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기타와 관련된 이름’이란 느낌은 받으실 겁니다. 우리나라에도 기타 상표 ‘세고비아’가 있으니까요. 학생 시절 이 브랜드의 기타를 가진 친구에게 “값이 세 곱이냐”고 물어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아저씨가 되기도 전에 시쳇말로 ‘아재력’(썰렁한 농담을 쏟아내는 능력)을 자랑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기타 팬들은 잘 아시겠지만 안드레스 세고비아(1893∼1987·사진)는 오늘날의 기타 음악과 뗄 수 없는 이름입니다. 단지 한 사람의 기타리스트를 넘어 기타라는 악기의 위상을 바꾸어 놓은 인물로 꼽히죠. 기타를 스페인의 민속악기 정도로 치부하던 사람들도 세고비아의 리사이틀을 본 뒤에는 이 악기가 넓은 표현력과 진지함, 깊이를 가진 정통 클래식 악기로 손색이 없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기타의 역사에서 저수지와 같은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스승이 없이 독학으로 기타를 마스터했지만 선대의 작곡가 소르와 타레가의 음악을 깊이 있게 해석해서 후대에 물려주었습니다. 젊은 세고비아의 연주에 탄복한 타레가가 제자로 삼겠다고 했지만, 갑자기 그가 세상을 떠나 실제로 사제 관계를 맺지는 못했죠.

이후 연주가로 성공한 세고비아는 줄리언 브림, 크리스토퍼 파크닝, 존 윌리엄스 같은 20세기 기타의 대가들을 제자로 키워냈습니다. ‘아란후에스 협주곡’을 쓴 작곡가 호아킨 로드리고는 그를 위해 ‘어느 귀인을 위한 환상곡’을 작곡했고, 이탈리아의 마리오 카스텔누오보테데스코, 브라질의 에이토르 빌라로부스도 그에게 작품을 헌정했습니다.

사람들이 스페인 민속 기타의 화려한 기교를 보여 달라고 요청해도 거절하고 한층 진지한 작품 연주에만 몰두한 세고비아였지만 그가 전통에만 얽매인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나일론 현이 짐승 창자를 꼬아 만든 기존의 기타 현을 대신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는 새로운 기타줄의 장점을 앞장서 전파했고, 기타는 예전보다 더 큰 소리를 내면서 표현력이 넓은 악기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다가오는 6월 2일은 기타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안드레스 세고비아가 세상을 떠난 지 30년 되는 날입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