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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제충만]외모에 대한 우리의 이중성

입력 | 2017-05-31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제충만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팀 대리

얼마 전 중학교 남자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있었다. 한 아이가 교실 안에는 권력이 있다며 “싸움을 잘하거나, 공부를 잘하거나, 잘생긴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자신은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아 평민을 맡고 있지만, 그래도 왕따는 아니라며 웃는 아이에게 교실에서 잘생긴 아이들이 왜 권력이 있는지 물어봤다.

아이들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잘생기면 일단 인기가 있다”는 것. 못생긴 데다 공부도 못하고 싸움도 못하면 ‘찐따’를 면하기 어렵다고 했다.

아이들은 현실을 꽤나 정확히 보고 있다. 캐서린 하킴 전 런던정경대 교수는 아름다운 외모와 같이 사람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들을 ‘매력 자본’이라고 정의하고 “일상을 지배하는 조용한 권력”이라고 말했다. 빼어난 외모로 얻는 프리미엄은 약 15%이며 실제 소득도 평균보다 15% 정도 높다고 한다. 국제미용성형수술협회의 데이터에 따르면 이런 프리미엄을 얻기 위해 2015년 한 해 대한민국에서는 115만 건의 성형수술이 이뤄졌고, 인구수 대비 압도적인 세계 1위다. 구직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88%가 외모가 스펙이라고 말하고, 취업성형을 고민해 보았다는 응답자가 절반을 넘었다.

굳이 이런 수치가 아니어도 아이들은 일상에서 너무나 쉽게 우리 사회의 외모 품평과 차별을 맞닥뜨린다. 어릴 때야 마냥 예쁘다고 하지만 어느 순간 “얼굴 보니 너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못생겨서 죄송하다”는 개그는 여전히 계속되고, 여자 연예인들은 나오자마자 일단 외모 품평회다. ‘잘생긴 알바에게 흰 셔츠 입히고 커피색 앞치마 둘러놓으면 최고의 인테리어’라는 게시글에 공감이 쇄도한다. 심지어 요즘은 대통령과 주요 관료의 얼굴까지도 평가하며 얼굴 패권주의, 증세 없는 얼굴 복지라며 웃는다. 아이들은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방식을 일찌감치 배운다.

문제는 외모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차별이 또래 문화와 맞물려 아이들에게 심한 스트레스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일하는 단체가 서울대 사회복지연구소와 함께 진행한 ‘아동 삶의 질 연구’에서 한 중학생은 “나는 화장을 하고 싶지 않은데 다른 애들이 거의 다 해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 성적 스트레스가 가장 크지만 두 번째는 외모”라고 말했다. 또래 그룹에 들어가기 위해 호감형 외모를 만들려고 애쓰다 보니 하루에도 몇 번씩 행복과 불행을 넘나든다고 한다. 15개국을 비교한 연구 결과에서도 한국 아이들은 외모와 자신의 몸에 대한 만족감이 꼴찌였고, 전체적인 행복감을 떨어뜨리는 주원인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외모지상주의로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들에게 쓸데없는 데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한다거나 발랑 까진 아이라고 비난하는 게 우리 어른들이 해야 할 최선일까. 화장품 업계의 상술이라는 소리나 자존감을 높이면 된다는 충고도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잘생기고 예뻐야 대접받는 우리 사회의 법칙은 교실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껏 멋을 부리고, 진한 화장에 각선미를 드러낸 청소년 연예인에게 “이대로만 자라다오”라며 어른들은 열광한다. 아이들은 이런 이중성을 보며 “네 나이 때는 안 꾸며도 예쁘다”는 말에 더 이상 속지 않는다. 아이들을 바꾸려고 괴롭히지 말자. 내세울 가치가 없어 외모가 최고의 자산이 되어버린 텅 빈 우리 사회를 바꾸는 게 먼저다.
 
제충만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팀 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