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게는 기념품이나 선물로 티셔츠만 한 게 없는 것 같다. 뉴욕 베네치아 버클리 파리 같은 도시에 있다가 집에 돌아오기 전이면 매번 티셔츠를 샀다. 처음에는 아버지 것만, 동생들이 결혼했을 때는 제부들과 차례차례 태어났던 조카들 네 명의 티셔츠를. 주로 그 도시의 상징물이나 대학 로고가 프린트된 종류였는데, 조카들은 지금도 티셔츠를 서로 물려 입곤 한다. 티셔츠란 그런 옷이 아닐까. 어디서나 살 수 있으며 낡고 늘어질 때까지 입어도 되고 다른 옷에 비해 가격도 저렴한 편이고 겉옷으로도, 카디건이나 스웨터 안에 입을 수도 있고. 대개 한 장쯤 갖고 있는 데는 이 같은 이유가 있을지 모른다.
야코프 하인의 소설 ‘나의 첫 번째 티셔츠’에 이런 단락이 나온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한에서 내 첫 번째 티셔츠는 노란색이었다. 노란색 티셔츠, 처음부터 너무 많이 빨아서 퇴색된 것처럼 보이고 형광빛이 났으나 그것은 나중엔 사라져버렸다.” 티셔츠에 관한 기억을 통해 작가는 동독에서 보낸 유년의 경험을 냉소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게 그린다. “나는 어디서 출발했을까?” 하는 근본적인 질문과 함께. 문득 나의 첫 번째 티셔츠는 어떤 것이었을지 궁금해지지 않나.
사람들이 입고 있는 티셔츠에 새겨진 그림과 문장들을 유심히 보게 된다. 에코백처럼 거기에도 어떤 개인적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 같아서. 다시 보니 아버지의 티셔츠는 그 안에 숨겨진 ‘진정한 비용’에 대해 떠올리는 내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아직 괜찮다고.
조경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