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더우먼’의 주인공 갈 가돗.
혼란에 빠진 세계를 구하는 슈퍼히로인 원더우먼이 지구촌 전체에서 환영받는 건 아닌 듯 하다. 레바논에서는 31일 개봉하는 영화 원더우먼의 주인공 갈 가돗(32)이 이스라엘인이라는 이유로 상영 금지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레바논과 이스라엘은 공식적으로 전쟁 중인 상태일 만큼 견원지간(犬猿之間)인데, 이스라엘 여군 출신인 가돗이 세계를 구하는 역할을 맡은 영화가 탐탁치 않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원더우먼을 맡은 가돗은 2005~2007년 이스라엘군에서 전투병 교관으로 2년 동안 복무했다. 이스라엘에선 18세 이상 남녀가 동등하게 병역의 의무를 진다. 가돗은 2004년 미스 이스라엘로 뽑힌 이듬해 군에 입대해 화제를 모았다. 제대 후 할리우드에 진출한 그는 군대 경험을 바탕으로 위험한 장면도 대역 없이 직접 연기하며 강인한 모습을 보여줬다. 무기에 해박한 지식 덕에 영화 ‘패스트 앤 퓨리어스(분노의 질주)’에서 지젤 역을 따내는 데 도움이 됐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원더우먼 상영에 반대하는 레바논 시민단체는 가돗이 이스라엘 병사 출신으로 가자지구를 겨냥한 이스라엘의 군대 정책을 지지해왔다며 영화 상영 금지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정부에 제출했다고 AP통신이 30일 보도했다. 가돗은 2014년 가자지구 전쟁 당시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하마스의 끔찍한 행위에 맞서 목숨을 걸고 조국을 지키려는 이스라엘군을 지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단체는 “국가가 올바른 결정을 내려야 한다”며 “상영 1시간 전에라도 취소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31일부터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영화관에서 개봉하는 원더우먼이 상영 중단될 가능성은 낮다. 레바논 정부가 이미 영화 상영을 승인한데다, 지난해 가돗이 출연했던 영화 ‘배트맨 vs 슈퍼맨’이 레바논에 상영됐을 때도 비슷한 보이콧 운동이 있었지만 그대로 상영된 전력이 있다. 영화 상영을 막으려면 레바논 경제부의 관련 위원회에서 위원 6명의 추천이 필요한데, 관련 절차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며 배우가 이스라엘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상영을 금지하는 건 옳지 않다는 여론도 적지 않다.
미스 레바논과 미스 이스라엘 셀카
레바논 국민은 이스라엘에 갈 수 없고 이스라엘인과도 접촉하지 못한다. 미스 레바논인 샐리 그리에지가 2015년 미국 마이에미에서 열린 미스유니버스 대회에서 미스 이스라엘인 도론 마탈론과 다정히 셀카를 찍었다가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그리에지는 “셀카를 찍으려는데 미스 이스라엘이 억지로 끼어들었다”며 뒤늦게 사과했지만 성난 여론에 한동안 시달려야 했다.
카이로=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