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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추정’ 일당 스님의 그림, 유족 동의없이 처분한 문하생

입력 | 2017-05-31 21:59:00


일당(日堂) 스님(1922~2014)의 문하생이 되길 원했던 고모 씨(64)는 2012년 무작정 스님을 찾아갔다. 평소 스님의 그림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스님은 불화와 인물화 그림으로 유명한 화승(畵僧). 고 씨는 서울 성북구의 한 절에서 스님의 시중을 들며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매일 스님에게 밥도 차려주고 심부름도 했다. 일당스님도 고 씨가 고마웠던 만큼 믿음도 깊어졌다.

2014년 7월 스님은 고 씨에게 64점의 그림을 전했다. 고 씨가 “그림을 팔아 박물관을 짓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박물관 건립은 스님의 오래된 꿈이었다. 이후 같은 해 12월 스님은 92세의 나이로 입적(入寂)했다. 하지만 고 씨는 스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유족이 그림을 돌려 달라 요구했지만 고 씨는 거절했다. 대신 고 씨는 그림 30점을 한 기업에 3억 원 가량을 받고 팔았다. 15점은 훼손됐고 나머지는 지인들에게 공짜로 나눠줬다.

서울북부지검 형사1부(부장 노정환)는 일당 스님의 작품 64점을 유족 동의 없이 처분한 고 씨를 횡렴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31일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일본 미술계에서 일당 스님의 그림은 호당 800만 원에 형성돼 있다”며 “64점이면 일본에서는 100억 원이 넘는 금액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고 씨는 “3년가량을 스님 곁에서 수발들며 희생한 대가로 그림을 받았다”며 “스님이 힘들게 생활할 자신이 걱정돼 그림을 팔아서 먹고 살라며 무상으로 줬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일당 스님은 한일 양국을 오가며 활동한 화승이다. 특히 한국보다 일본에서 주목받았다. 화려한 색감의 불화나 인물화를 주로 그렸다. 일당 스님은 한국 불교 최고의 여승으로 불린 일엽스님(1896~1971)이 출가 전 낳은 아들이기도 하다. 일당 스님도 어머니의 뜻을 따라 66세의 늦은 나이에 출가해 화승으로 살았다.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