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라 송환]덴마크 도피 245일만에 귀국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가 31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공항보안구역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정 씨는 “어머니와 박근혜 전 대통령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억울하다”며 이화여대 부정입학 등 모든 의혹을 부인했다. 인천=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어머니와 (박근혜 전) 대통령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하나도 모르지만 일단 저는 좀 억울합니다.”
31일 귀국한 정유라 씨(21)는 어머니 최순실 씨(61·구속 기소)의 국정 농단 사건과 자신을 둘러싼 이화여대 부정입학 및 학사비리, 삼성의 승마훈련 특혜 지원 의혹 등을 거의 모두 부인했다. 이날 오후 3시 16분 인천국제공항 공항보안구역에서 기자들 앞에 선 그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자신을 적극 변호했다. 그가 입국한 것은 지난해 9월 28일 덴마크로 도피한 지 245일 만이고, 올해 1월 1일 덴마크 현지 경찰에 체포된 지 150일 만이다.
정 씨는 삼성의 승마지원 경위에 대해 “어머니한테 들은 게 있기 때문에…삼성전자 승마단이 6명을 지원하고 저는 그중 1명이라고 해서 그런 줄로 알았다”며 “제가 모든 특혜를 받았다고 하는데 아는 게 별로 없다”고 주장했다. 또 ‘이화여대 부정입학을 인정하느냐’는 질문에 “내 전공이 뭔지도 잘 모른다. 대학교에 가고 싶어 한 적이 한 번도 없다”며 자신이 학사 비리에 개입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을 폈다. 대학 입학 면접 때 아시아경기 선수단복을 입고 금메달을 가져갔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임신 중이어서 단복이 맞지 않아 입지 않았다. 금메달은 입학사정관이 가져와도 된다고 해서 가져갔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친 정 씨는 오후 4시 21분경 검찰 승합차를 타고 서울중앙지검 청사에 도착했다. 정 씨는 이경재 변호사와 변호인 접견을 한 뒤 오후 5시 반부터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1부(부장검사 이원석)에서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정 씨에 대해 1일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정 씨는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받은 뒤 어머니 최 씨가 수감된 서울 남부구치소에 입소했다. 특검은 지난해 12월 정 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할 때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던 최 씨와 분리 수용하기 위해 유치 장소로 남부구치소를 지정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65·구속 기소)이 3월 31일 서울구치소에 구속된 뒤 최 씨가 남부구치소로 이감되면서 모녀가 같은 구치소에 머물게 됐다.
법무부가 파견한 송환팀은 지난달 30일 오후 9시 20분(현지 시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대한항공 926편 비행기에 오른 정 씨를 체포하고 수갑을 채웠다. 비행기에 오른 정 씨는 왼편 맨 뒤에서 두 번째 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옆에는 검찰 여성 수사관이 앉았다. 앞뒤로는 남성 수사관 2명이 앉아 정 씨를 빙 둘러쌌다. 비행기가 한국을 향해 갈수록 정 씨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정 씨 좌석 뒤쪽 화장실 문에는 ‘사용 불가’(수리 필요)라고 쓰인 붉은색 스티커가 붙었다. 승객이 정 씨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는 동시에 정 씨의 동선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정 씨가 화장실을 이용할 때 수사관은 화장실 앞에서 수갑을 들고 정 씨를 감시했다. 식사 시간과 화장실을 이용할 때만 수갑을 풀어줬다.
같은 비행기를 탄 승객의 시선은 정 씨에게 쏠렸다. 승객 대부분이 탑승 전부터 정 씨의 탑승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정 씨를 보러 일부러 근처 화장실을 이용하며 “정유라 어딨나” “저기 있잖아”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엄마 잘못 만나 애를 망쳤다. 쟤도 엄마 잘못 만나 안됐다”고 하는 승객이 있는가 하면 “자업자득”이라며 혀를 끌끌 차는 승객도 있었다. 이륙 뒤 11시간여 만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자 정 씨는 매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승객이 내리기 시작하자 정 씨도 일어나려 했지만 남자 수사관이 앉으라고 제지했다.
앞서 30일 낮 12시 30분 덴마크 코펜하겐 공항에 처음 나타난 정 씨는 비교적 건강한 얼굴에 표정도 밝았다. 법무부에서 파견된 정 씨 송환팀은 이곳에서 정 씨와 만났다. 송환팀은 경유지인 암스테르담까지 운항할 KLM항공과의 협의에 착수했다. 기장의 질서유지권이 발동됐고 정 씨는 일반 탑승구가 아닌 별도 통로로 가장 뒷좌석에 승객보다 먼저 탑승했다. 기자들이 정 씨의 사진을 찍으려 하자 네덜란드 승무원은 이를 막았고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는 순간 카메라를 뺏어서 돌려주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 방송을 했다.
코펜하겐·암스테르담·대한항공 기내=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 김준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