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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해의 인사이트]장하성 목소리가 안 들린다

입력 | 2017-06-01 03:00:00


최영해 논설위원

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은 ‘정의로운 자본’을 강조한다.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을 정의와 불의로 무 자르듯 딱 나눈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는 공정과 정의를 중시한다. 정의로운 자본이 그가 주창하는 재벌개혁론의 근거다. 2014년 펴낸 ‘한국 자본주의’에서 장하성은 “대한민국의 자본주의가 정의롭게 작동하려면 노동으로 삶을 꾸리는 절대 다수의 국민들이 민주적인 정치 절차를 통해 자본가들이 올바르게 행동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썼다.

비정규직 해법 입 다물어

장하성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와 함께 재벌개혁운동을 하면서도 한편에선 ‘배신자’ 소리를 듣기도 했다. 기업 현실을 인정하면서 개혁 방법론을 놓고 진보좌파 진영에서 반발이 있었던 것이다. 장하성의 ‘한국 자본주의’에는 비정규직 해법도 나온다. 정규직 전환 기준 2년이 ‘동일 노동자의 근무기간’으로 돼 있는 현행 법률을 ‘동일 업무의 존속 기간’으로 바꿔 2년이 지나도 함부로 비정규직을 자를 수 없도록 하자는 제안이다. 그 나름대로 비정규직 해법을 갖고 있는 그가 문재인 대통령의 ‘경총(한국경영자총협회) 때리기’ 발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데 대해선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대통령이 나설 게 아니라 장하성이 교통정리를 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경제 5단체 중 규모나 영향력에서 약체로 꼽히는 경총을 겨냥해 “성찰과 반성부터 하라”고 한 것은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 경총은 4000여 개 회원사 가운데 90%가 중소기업이다. 중소기업을 보호하고 키우겠다는 문 대통령이 애꿎게 중소기업 경영자부터 닦달한 모양새다. 설령 경총의 기강을 다잡는다고 비정규직 해법이 풀린다면 이전 정부는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노무현 정부에서도 복잡다단한 비정규직 문제를 풀어내지 못했다.

염려스러운 것은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과 국정기획자문위 대변인, 청와대 대변인까지 한목소리로 경총을 비난했다는 점이다. 갈등 사안을 풀려는 국정 운영 자세보다는 아직도 9년 야당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다. 국정기획위에 노조 대표들이 두 사람이나 들어갔지만 재계 대표는 한 사람도 없는 것도 균형에 맞지 않는다. 일사불란해 보이는 경총 비판을 누군가 기획한 것이라면 경제가 돌아가는 현장을 잘 모르는 사람의 작품일 가능성이 크다.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문 대통령 발언이 적절했는지를 놓고 나중에라도 참모들이 치열하게 토론했기를 바란다.

대통령의 균형 잡아주어야

경제를 보는 대통령의 시각이 한쪽에 치우쳐 있다면 정책실장이 균형을 잡아줘야 한다. 일자리를 늘린 중소기업에 세무조사를 면제해주겠다는 것은 징세권의 남용이다. 과징금이나 벌금 같은 징벌로 비정규직 문제를 풀겠다는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의 정책도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불공정거래를 뿌리 뽑고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는 재벌개혁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기업의 경영 의사결정에 지나치게 간여하려는 것은 걱정스럽다. 동네 빵집을 보호하려고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을 막으니 외국계 회사가 어부지리를 얻고, 가맹점보호정책을 펴니 대리점을 없애고 본사에서 직영하겠다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비정규직부터 자르고 신입사원은 뽑지 않겠다는 얘기가 재계에서 들린다. 선의(善意)로 마련한 정책이 정작 현장에선 선의가 안 통할 때가 적지 않다. 경제에 공짜는 없다. 대통령은 사회운동가가 아니라 자유와 경쟁을 촉진하는 시장경제의 파수꾼이어야 한다. 그만큼 정책참모 장하성의 어깨가 무겁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