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해 논설위원
비정규직 해법 입 다물어
장하성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와 함께 재벌개혁운동을 하면서도 한편에선 ‘배신자’ 소리를 듣기도 했다. 기업 현실을 인정하면서 개혁 방법론을 놓고 진보좌파 진영에서 반발이 있었던 것이다. 장하성의 ‘한국 자본주의’에는 비정규직 해법도 나온다. 정규직 전환 기준 2년이 ‘동일 노동자의 근무기간’으로 돼 있는 현행 법률을 ‘동일 업무의 존속 기간’으로 바꿔 2년이 지나도 함부로 비정규직을 자를 수 없도록 하자는 제안이다. 그 나름대로 비정규직 해법을 갖고 있는 그가 문재인 대통령의 ‘경총(한국경영자총협회) 때리기’ 발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데 대해선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대통령이 나설 게 아니라 장하성이 교통정리를 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경제 5단체 중 규모나 영향력에서 약체로 꼽히는 경총을 겨냥해 “성찰과 반성부터 하라”고 한 것은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 경총은 4000여 개 회원사 가운데 90%가 중소기업이다. 중소기업을 보호하고 키우겠다는 문 대통령이 애꿎게 중소기업 경영자부터 닦달한 모양새다. 설령 경총의 기강을 다잡는다고 비정규직 해법이 풀린다면 이전 정부는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노무현 정부에서도 복잡다단한 비정규직 문제를 풀어내지 못했다.
염려스러운 것은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과 국정기획자문위 대변인, 청와대 대변인까지 한목소리로 경총을 비난했다는 점이다. 갈등 사안을 풀려는 국정 운영 자세보다는 아직도 9년 야당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다. 국정기획위에 노조 대표들이 두 사람이나 들어갔지만 재계 대표는 한 사람도 없는 것도 균형에 맞지 않는다. 일사불란해 보이는 경총 비판을 누군가 기획한 것이라면 경제가 돌아가는 현장을 잘 모르는 사람의 작품일 가능성이 크다.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문 대통령 발언이 적절했는지를 놓고 나중에라도 참모들이 치열하게 토론했기를 바란다.
대통령의 균형 잡아주어야
경제를 보는 대통령의 시각이 한쪽에 치우쳐 있다면 정책실장이 균형을 잡아줘야 한다. 일자리를 늘린 중소기업에 세무조사를 면제해주겠다는 것은 징세권의 남용이다. 과징금이나 벌금 같은 징벌로 비정규직 문제를 풀겠다는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의 정책도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