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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형권의 아메리카 견문록]‘동네북’ 돼버린 NYT…트럼프 이어 힐러리도 공격

입력 | 2017-06-01 20:46:00


힐러리, “아무 것도 아닌 e메일 스캔들을 마치 진주만 공습처럼 보도”
대선 패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NYT 지목
트럼프, “힐러리는 자신만 빼고 모든 걸 탓하고 있다”고 비난


1851년 창간된 진보 성향의 뉴욕타임스(NYT)는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70)을 공개 지지했다. 뉴욕타임스의 폴 크루그먼, 토머스 프리드먼 같은 유명 칼럼리스트들은 대선 기간 내내 ‘무자격자 도널드 트럼프(공화당 대선후보·45대 미국 대통령)의 대통령 절대 불가론’만을 주제로 칼럼을 썼다. 트럼프는 이런 NYT에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다. ‘꼬마’(Little) 마코 루비오(공화당 상원의원), ‘거짓말쟁이’(Lying) 테드 크루즈(공화당 상원의원), ‘얼간이(Goofy)’ 엘리자베스 워런(민주당 상원의원), ‘부정직한’(Crooked) 힐러리 클린턴처럼 당 내외를 가리지 않고 경쟁자나 정적(政敵)에겐 모욕적인 수식어를 붙여 낙인찍기 효과를 노리곤 했던 트럼프는 NTY 앞엔 ‘망해가는(Failing)’이라는 형용사를 붙였다. 심지어 “가짜 뉴스를 만들어 내는 신문사로서, 내 적이 아니라 모든 미국 국민의 적”이라고까지 했다. ‘트럼프 대 NYT’의 대립과 갈등은 더 이상 새삼스럽지도 않을 지경.

그런데 지난달 31일 NYT로선 예상치 못한 비판자가 등장했다. 자신들(NYT)이 ‘역사상 가장 많은 준비가 돼 있는, 가장 자격 있는 대통령 후보’라고 평가했던 클린턴 전 장관이 자신의 대선 패배 원인 중 하나로 NYT를 지목한 것이다. 클린턴은 이날 정보기술(IT) 전문매체인 ‘리코드’(Recode)가 캘리포니아에서 주최한 컨퍼런스에 초청돼 1시간 넘게 대선 전반에 대한 질의응답을 가졌다. 클린턴은 “대선 기간 내가 내린 모든 결정에 대해선 내가 책임을 지지만, 그것들(내 결정들)이 내가 패배한 이유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패배 원인은 자신(클린턴)이 결정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요소들 때문이었다는 얘기다. 구체적으로 △선거 막판에 e메일 스캔들 추가 수사 결정을 내린 중앙정보국(FBI)의 제임스 코미 당시 국장 △각종 해킹을 통해 미국 대선에 개입한 의혹이 짙은 러시아 정부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 돌아다닌 수많은 가짜 뉴스 등과 함께 ‘NYT의 지나친 e메일 스캔들 보도’를 꼽았다. 클린턴은 “e메일 스캔들과 관련해 내가 실수한 부분이 있지만 결과적으론 (범죄 혐의가 없는) 아무 것도 아닌 일이었다”며 “그런 e메일 스캔들을 NYT는 마치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진주만 폭격처럼 (엄청난 사건으로) 보도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NYT 등의) 그런 보도가 나를 미치게 만들 지경이었다”고 덧붙였다.
NYT가 공화당 후보였던 트럼프에게도 얻어맞고, 민주당 후보였던 클린턴에도 꼬집히는 ‘동네북’ 신세처럼 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NYT마저 비판하는 클린턴’을 비판했다. 트위터에 “‘부정직한(Crooked) 힐러리 클린턴이 이제 (대선 패배 이유에 대해) 자기 자신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를 비난한다. 자신이 끔찍한 후보였다고 인정하지는 않으면서…”라고 지적했다. 보수 성향의 인터넷 매체들도 “클린턴이 (자신을 지지했던) NYT, 소속당 전국조직인 DNC까지 비판했으면 말 그대로 ’자신을 뺀 모두‘를 비판한 셈”이라고 비꼬았다.

클린턴의 NYT 비판은 ’객관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지난해 대선(11월8일) 직전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미국 성인남녀 1017명을 대상으로 언론의 편파성 문제를 조사한 결과 ’언론보도가 클린턴에 유리하게 편향됐다‘는 대답(52%)이 ’트럼프에 유리하게 편향됐다‘는 의견(8%)보다 무려 44%포인트나 많았다. 공화당도, 민주당도 아닌 무당파 중에서도 ’클린턴 편향‘이란 대답(41%)이 ’트럼프 편향‘(2%)의 20.5배에 달했다.

클린턴은 컨퍼런스에서 심지어 “나는 지난 대선이 굉장히 박빙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클린턴이 승리할 것‘이라고 가정(假定)했다. 나는 그런 광범위한 가정의 피해자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NYT는 31일 “디지털 부문의 광고수익과 가입자가 모두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갈수록 감소하는 지면광고 매출을 보완하기에는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며 직원들을 대상으로 바이아웃(Buy-out)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바이아웃은 계약 만료 전인 직원에게 일정액의 연봉을 지급하고 자발적 퇴직을 유도하는 제도. 한국의 명예퇴직과 비슷하다. NYT는 “이번 구조조정은 편집국(뉴스룸) 중간간부급 에디터(editors)가 1차 대상이지만, 일선 현장기자들도 신청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NYT는 “지난 1분기 신문 지면광고가 18% 급감하면서 전체 광고수익이 7% 줄었다”고 밝혔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