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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승 전문기자의 사진 속 인생]철학자의 표정

입력 | 2017-06-02 03:00:00


이종승, ‘책 찾는 최진석 교수’(2015년)

철학이 그리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는 걸 최진석 교수(서강대 철학과)를 통해 알았다. 최 교수의 대표작인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아니 이렇게 쉽게 설명하면 좋을걸.’ 책을 읽으면서 철학을 어렵게 만든 사람들을 원망하기도 했다. 최 교수의 창의적인 노자 해석은 신선했으며 그가 도덕경을 통해 세상에 하고 싶은 말에 공감할 수 있었다. 최 교수는 많은 저서에서 ‘우리’ ‘전체’ 대신 ‘나’ ‘개성’이 강조돼야만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한다. 선진국 대열에 끼려면 “나만의 똥을 싸라”고 외치는 그의 모습에서는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비뚤어진 세상을 바로잡으려는 사람은 혁명가다. 게임 체인저가 혁명가와 비슷한 의미이지만 거기에는 절박함 간절함 전투력이 조금은 부족하다. 나는 최 교수가 혁명가라고 생각한다. 어느 골상가(骨相家)가 그를 보고 “세상을 바꾸는 눈을 가졌다”라고 했지만 관상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는 이미 혁명가의 길로 들어섰다. 기술이 세상을 바꾸는 시대에 철학(생각)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용기에 박수 치고 싶어졌다. 내가 보내는 박수 중의 하나는 사진으로 그의 일상을 찍는 것이었다. 최 교수는 연출 없는 사진을 찍고 싶다는 요청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대부분의 시간을 연구실에서 보내고 가끔 연구실에서 잠을 자기도 한다기에 이왕이면 그런 장면이 걸리기를 바랐지만 공부에 지쳐 잠에 곯아떨어진 철학자는 찍지 못했다.

그를 찍으면서 특별하다고 느꼈던 것은 없었다. 열심히 공부하고 글을 쓰고 또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과 토론하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마치 향촌에 눌러앉아 후학을 기르는 조선시대 선비와 같았다. 그는 철학과 교수로 건명원 원장으로 세상을 바꾸는 호랑이들을 길러내고 싶어 한다. 먹이에 순응하는 동물원의 호랑이가 아니라 온 산을 쩌렁쩌렁 울리는 진짜 호랑이 말이다.

사진은 최 교수가 연구실에서 책을 찾고 있는 모습을 찍은 것이다. 책을 보다가 안 풀리는 실마리를 풀기 위해 서가를 응시하는 모습은 약간 심각해 보인다. 누구라도 지을 수 있는 표정이어서 철학자도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느끼게 한다.
 
이종승 전문기자 urises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