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 철학자·영산대 교수
‘멍 때리기 대회’까지 열리고 있습니다. 대회의 규칙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오래 유지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참가자들에게는 몇 가지 활동이 금지됩니다. 그 첫 번째가 ‘스마트폰 확인’입니다. 의미심장합니다. 그 밖에 잡담, 노래와 춤, 웃음 등이 금지됩니다.
멍 때리기에 대해서는 고대로부터 철학자들도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신(神)은 부동의 쾌락을 즐기는 존재입니다. 신적 쾌락은 움직임이 아니라 ‘부동의 정적(靜寂)’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가끔 명상이나 면벽수도 등으로 신적 쾌락을 모방하며, 영적 고양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상에서 보통 사람들의 쾌락은 활발히 움직이는 데에 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는 노래 부르고 춤추거나, 운동을 하거나, 온갖 게임을 즐기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디지털 시대에 인간의 오감은 다양하고도 잘(?) 조직된 문화적 자극에 쉴 새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오감은 중요합니다. 나이가 들면 퇴행성 변화에 가장 먼저 노출되는 기관들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인간 자신의 탈진(脫盡)을 향해 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인류 역사의 주요 이슈가 ‘자연의 소진’에서 ‘인간의 탈진’으로 이동할지 모릅니다. 산업사회에서 인간의 실존적 문제가 ‘소유냐, 존재냐’라는 물음에 담겨 있었다면, 디지털 사회의 실존성은 ‘활동인가, 존재인가’라는 물음에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멍 때리기는 인간 활동의 임계점에서 우리의 존재 의미를 찾고자 하는 시도인 것 같습니다. 한때 인터넷상에서 ‘잊혀질 권리’를 찾았듯이 이제 ‘가만히 있을 권리’를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권리는 누가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각자 ‘내가 찾아야’ 합니다. ‘나를 찾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구체적 실천은 일상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것은 이른바 초연결사회에서 외부의 자극과 부름에 모두 응답하지 않는 데에 있습니다. 거절의 지혜와 기술을 발휘하는 데에 있습니다. 남들이 다 한다고 따라 하지 않는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있을 권리를 찾는 일은 ‘개성 있는 사람이 되는 길’이기도 합니다. 삶의 멋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일상의 행복을 맛보는 길이기도 합니다.
김용석 철학자·영산대 교수